❤️ 로코코 시대 미술

        - 로코코의 개념

프랑스어 rocaille(조개무늬 장식)이라는 말에서 시작된 로코코(Rococo)18세기 프랑스에서 생겨난 예술형식이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를 꾸몄던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된 로코코는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으로 왕실 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주아의 예술이다. 베르사의 궁전은 건축적으로도 그렇고 조각 회학 음악 문학 이것들이 모두가 이루어지는 문화 중심 센터 역할을 했다. 절대 왕정을 위한 문화예술센터인 베르사유를 꾸미기 위한 모든 예술 정책이 프랑스에서는 바로크라고 볼 수가 있다. 궁전을 꾸밀 때에 이 사치스럽고 화려한 조개 장식을 뜻하는 건데 로코 거를 떠올렸을 때 장식적인 이미지가 떠오른 것이다. 18세기에 바로크에 영향을 받은 기술이 로코코니까 후기 바로크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17세기 유희와 쾌락의 추구에 몰두해 있던 루이 14세 사후, 남성스럽고 조금 엄숙한 절대 왕정 그 힘을 과시하기 위한 화려한 스타일이었다면 이것 건은 조금 부드럽고 서정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좀 경박하다는 특징도 있다.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 루이 14세 시대의 역사적 사건

그 당시 프랑스는 왕의 권력을 한껏 치켜 세운 그림을 보면 시대상을 알 수 있다.
풍성한 머리숱을 가지고 있고 황금 칼을 차고 지팡이를 짚으면서 위엄 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눈부분을 확장시켜 보면 빛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왕을 볼 때는 보는 사람들은 올려다 봐야 한다.
이 태양왕 루이 14세의 치세의 성격을 아주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베르사유의 궁전을 건설해서 모든 국가의 기능을 집약시켰다.

모든 귀족들을 에티켓이라는 궁정 규칙으로 묶어두고 태양왕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세상이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에 머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이 절대 왕이 거하는 베르사유 궁전에서라야 귀족 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루이 14세는 사치와 향락의 극치를 누리고 살았다. 그가 죽자 당대의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은 이제 더 이상 베르사의 궁전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의 영지로 돌아가서 베르사이유가 가지고 있는 그 화려함의 극치를 자신들의 성에 구현시키고 싶어 했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바로 루이 14세가 죽고 귀족들의 시대가 도달하게 된 것이다.

 

 

❤️ 로코코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 장앙투안 바토 로코코의 선구자 

대표적인 화가로 장앙투안 바토(16841010~ 1721718) 발랑시엔 태생으로 처음에는 지방 화가로 활동했지만 18세 때 파리로 가서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아,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였다. 무대 미술가에게서 미술을 배우게 되었다.
아깝게 2등으로 당선되었지만 이제까지 없던 유형의 그림으로 인정을 받아서 로코코 미술의 창시자다 이렇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늘 병약했다. 3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는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대표작으로 제르생의 상점 간판이라는 작품인데 갤러리에서 귀족들이 그림을 옮기는 걸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로코코적인 성향을 좀 보여주는 재밌는 그림인데 하인들이 집어넣고 있는 그림이다. 제르생이 누구냐 하면 와토의 친구이자 미술품 상인이었다. 이 작품은 화랑 입구에 장식한 작품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림의 중앙에 보면 와토의 자화상으로 보이는 젊은 신사가 정중히 숙녀를 화랑 안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초대받은 그녀가 힐끗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거기에는 루이 14세의 그림이 상자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화랑의 주인인 제르생이 귀족 또는 부르저로 보이는 손님에게 둥그런 한 점 그림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이 귀족을 보면 돋보기를 보면서 아주 흥미롭게 관찰을 하고 있다.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라고 하는 작품이다.
와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키테라 섬은 고대 그리스의 한 섬으로서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섬 사랑의 섬으로써 사랑하는 여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상상 속의 섬 이상적인 섬이다.
오른쪽에 보면 비너스가 보인다.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이 이 그림을 보고 그 당시의 분류법으로는 잘 분류가 되지 않는 새로운 장르의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에다가 새로운 장르의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페트 갈랑트이다.
이 양식이 로코코의 전형적인 양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페트 갈랑트의 뜻은 전원의 축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세련되게 차려 입은 남녀들이 활짝 트인 야외에서 춤추고 담소하고 유희하는 모습을 주로 담고 있는 그림이다. 멀리 키데라 섬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고 안개 낀 듯한 파스텔톤의 바다 위로 돛이 보이고 그 주변에 포동포동하게 가려진 큐피드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몽환 쪽으로 보인다.
그림을 살펴보면 많은 쌍의 남녀들이 보인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세련된 멤버로 여성들에게 매력 있고 정중하게 대하고 있어서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우아함과 사랑스러움이 듬뿍 담겨 있다.
로코코 후대에 갈수록 사실 이와 같은 남녀의 그림에 약간의 유머와 풍자를 담아서 남녀의 삐뚤어진 욕망과 탐욕을 그렸을 것인데 이 작품은 한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이와 같이 판타지적인 이상향을 꿈꾸는 듯한 이 그림은 늘 병약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은 이런 현실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한다는 슬픔 적인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와토는 이와 같이 페트 갈라트 즉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선남선녀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다.

로코코 스타일이 목가적인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서 향락적인 그런 그림을 추구하는 배경이 있고 신사와 숙녀가 보이는데 이런 제스처 보면 좀 과한 경향이 있다.

로코코는 바로크나 르네상스처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조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18세기는 로코코 뿐만 아니라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가 병존하는 시대이며, 이 시기에 유행하고 나타난 예술양식들은 서로 간에 영향을 받고 주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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