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나르다 다빈치의 일생과 미술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소년 시절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 피렌체 공화국 토스카나의 빈치 마을에서 태어났다.
다빈치라는 용어가 익숙해서 성시로 생각하기 쉬운데 다빈치는 그가 빈치 마을의 출신이라는 뜻이다.
그의 본명은 레오나르도 디세르 피에로 다빈치로 세르 피에로의 아들 레오나르드였다.
레오나르도의 아버지는 변호사였으며 어머니는 농민이었는데 사생아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서 신분상의 활동 제약이 있었다..

그나마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들보다 사생아에 대한 대우가 괜찮은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나 약사는 될 수가 없었으며 대학에도 진학할 수 없었다.

변호사였던 아버지는 레오나르도가 합법적인 아들이었다면 공부를 시켰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기에 아들을 피렌체로 보냈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도나텔로의 가장 우수했던 제자로 조각과 회화 등 다방 면에서 재능을 보였던 베로키오라는 화가의 공방에 수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도나텔로의 사후 베로키오는 도나텔로의 후계자로서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는 미술가가 되었으며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가진 미술가라 할 수 있었다.
10대 중반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벨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가서
다른 수습생들처럼 청소와 잔심부름 등을 하며 미술을 배워나갔다. 그렇게 붓을 닦고 알료를 받는 등의 일을 하면서 그림 실력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레오나로도 다빈치는 공방 생활을 하는 동안 스승행 베로키오 외에도 보티첼리를 비롯해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서 점점 능력을 키워나갔다.

베로키오는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의 대표적인 화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의 스승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청년 시절


그렇게 다빈치는 20살에 베로키오의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에 조수로 참여해 화면 속에 보이는 꼬마 천사 두 명을 맡게 되었다. 
이후 1466년부터 1482년을 그의 제1의 피렌체 시대라고 부르는데 당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수태를 예고하는 부분을 표현한 수태고지 등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1482년부터 1499년을 제1의 밀라노 시대로 밀라노의 스포르차 귀족 가문의 화가로 초빙되었는데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걸작 중 하나로 불리는 암굴의 성모와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모나리자를 그리는 화법의 바탕이 되는 스푸마토라는 다빈치의 화법으로 암굴의 성모가 제작되었다.
3차원의 세계를 그리는 방법으로 대기 원근법이라고도 불리죠 쉽게 말해서 회화에서 색과 색 사이의 경계선 구분을 부드럽게 처리하는 방법이다.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의 성당 수도원의 식당 벽화로 그려진 최후의 만찬은 다빈치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의 요청으로 그린 그림이다. 
가로 880cm에 새로 460cm나 되는 거대한 작품이며 다빈치는 1495년부터 최후의 만찬 제작에 착수하여 3년 후인 1498년에 그림을 완성시켰다. 

수학적 계산으로 접근한 대칭적인 구도와 원근법 그리고 각 인물들의 성격을 바탕으로 그린 표정과 그들의 행동들은 당시 최후의 만찬의 장면을 드라마틱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걸작인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하루 전날 자신의 열두 제자들과 함께 가진 식사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예수는 누군가가 자신을 팔아먹을 것이라 말하고 그림에 범인이 누구인지 힌트를 주는 동시에 그 말을 듣고 놀라는 제자들의 제각각의 반응도 아주 잘 나타내었다. 소실점으로 다빈치는 원근법을 처음으로 나타내었다.

 

그다음으로 고대 로마의 건축과 비트르비우스가 쓴 건축 1 3장의 심장 건축 편에서 인체의 비율을 말한 것으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원과 정사각형 안에 팔다리를 뻗고 있는 남자가 이상적인 인체 비율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팔이나 다리를 뻗으면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인 정사각형과 원에 드러났기 때문이다라고 쓴 대목을 읽고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 그림을 보면 팔과 다리를 벌렸을 땐 이렇게 원에 딱 들어가고 다리를 붙였을 때 정사각형에 딱 들어가게 된다. 
똑바로 산 사람을 보았을 때 배꼽을 기준으로 머리끝까지와 발 끝까지의 비율은 11.61 8로 오늘날에도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황금 비율의 시초가 바로 다빈치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2 밀라노 시대와 모나리자

1500년부터 1506년을 그의 제2의2 피렌체 시대라고 하는데 그는 1499년 프랑스 왕 의 12세의 밀라노 침입으로 1500년의 피렌체로 돌아왔다.
여기서 제단화를 그리고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어 1506년 밀라노에서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우리 12세의 궁정 화가가 되었는데 1506년부터 1513년을 그의 제2의 밀라노 시대라고 한다.

1516년 프랑스 여왕 프랑스와 1세의 초청을 받아 그의 제자와 함께 이주해서 세 점의 그림을 완성시킨다.
이때 완성된 모나리자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로 현재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모나는 유부녀 이름 앞에 붙이는 이탈리아어 경칭이며 리자는 초상화의 모델이 된 여인의 이름을 나타낸다.

가로 53cm의 새로 77cm 크기의 패널 위에 그린 유화이며 1503년에서 1519년경에 완성되었다고 추정된다.
모나리자는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여인의 그린 초상화로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하여 넓은 안개가 덮인 듯한 효과를 주어 미스터리함을 풍기는 그림이다.

구도는 당시 가장 기본적인 초상화의 구도였던 피라미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인물을 배경보다 높게 배치하는 방식은 오늘날 화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기법이지만 르네상스 시대는 보기 드문 방식이다.
모나리자의 여인에게는 눈썹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가늘게 그려져 있다..
당시에는 이마가 넓은 여자가 미인으로 여겨져 눈썹을 밀거나 가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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