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네스크 시대 미술

        - 로마네스크 시대란?

0세기부터 12세기(지역에 따라서는 13세기 전반까지를) 로마네스크 시대라 부른다. 

넓은 영토를 가진 프랑크제국이 분열되고, 노르만인, 사라센인 등의 거듭되는 침입으로 서유럽에 혼란과 공백이 계속되는 사이에 각지의 봉건 제후는 세력을 강화하고 고대 로마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로마네스크라는 칭하며 각지에서 부흥한 수도원을 단위로 해서 창조되는 것이 각광받는 일이 생기며 중앙집권제는 붕괴되었다.

로마네스크 미술은 대략적으로 기원후 약 1,000년부터 고딕 양식이 13세기 이후에 나타날 때까지의 서유럽의 미술을 말하며 두꺼운 석조의 벽체(壁體), 아치, 돔을 가진 건축에 끼친 고대로마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로마네스크(로마풍)라는 건축 양식이 대표적인 사항이다.

 

 

        - 로마네스크 시대의 역사적 사건

AD 395년에 동서 로마가 분열을 하고 동로마 제국은 분열되어서도 천년 이상은 유지가 되지만 서로마 제국은 금방 망했다. 그것은 라인강 북쪽에 있었던 게르만 민족들이 밀고 내려왔기 때문이다. 게르만. 민족은 그들 옆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훈족 때문에 서쪽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기존의. 서로마 제국 영토를 게르만 민족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이제 중세가 시작이 되는데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프랑크 왕국이 지금의 유럽 전체를 통일하게 되었다.

교황은 800년에 카를로스 대제에게 서로마 제국 황제 서로마 제국의 전통을 잇는 황제가 된다. 오늘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대체적인 모습이 9세기 또는 10세기 경에 완성이 되었다. 5세기에서.5세기에서 10세기 중세인들은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삶의 근본적인 해답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고 내세의 천국으로 갈 수 있다면 그들은 현실을 감내할 수가 있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가려면 죽기 전에 일생 동안 저지른 죄를 용서받아야 된다고 믿었고 성지 순례는 가장 확실한 참여의 방법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에 그 험한 길들 미지의 길들 그리고 온갖 도적과 강도와 온 위험이 산재해 있는 그곳을 그들은 열정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그 길을 찾아갔었던 것이다. 그런데 11세기 들어오게 되면 십자가 운동으로 성지순례 운동이 막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뜻밖에도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장소가 중세 유럽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산티 야곱의 콤포스텔라이다. 야고보 성인이 예루살렘에서 순교를 당한 후에 제자들이 빈 배에 시신을 실어 보냈는데 그 배가 스페인 해안까지 떠내려왔고 거기에 어느 곳에 묻혀 있다가 800800년에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발굴됐다. 그 소문이 유럽에 기독교인들에게 퍼지자 산티아고 데 코페스타라까지 가보자 하는 순례 행렬이 붐을 이루게 된다. 본래의 예루살렘과 또는 로마 레지아가 있는 순례의 목적지였는데 이제 새롭게 산테아고도의 코페스테라라고 하는 새로운 목적지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묻혀 있는 이곳이 새로운 순례길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야고보 성인의 별이 빛나는 들판이라는 뜻이 산티아고 데 콤베스텔라이다.

산티아고 대 콘페스텔라에 세워진 성당이 최종적인 순례의 목적지가 되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내  4개의 출발점은 모두 성당에서 출발을 하게 되겠다.이와 같은 순례 열풍은 수많은 편의시설을 제공해야 하고 편의시설을 만들다 보면 새로운 도시들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다음에 기존의 도시들도 새로운 순례객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대규모 성당을 짓고 또 도시의 모습을 새롭게 꾸미고자 하는 그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 유럽의 11세기 12세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새로운 성당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 로마네스크 시대의 건축 양식과 대성당

 11세기 12세기에 이처럼 새로운 형식의 교회를 짓고자 하는 그 사람들이 어떤 일정한 형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지어졌던 교회들을 일컬어서 로마네스크 건축이라고 하는 것이다.

로마네스크라는 말은 뭐냐면 로마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따라와서 교회를 지었다 해서 로마를 닮은 로마식의 로마네스크 건축이 유행하게 되는 것이다. 로마의 건물 그러면 여러분 콜로세움을 대표적으로 떠올리게 되는데 콜로세움의 대표적인 건축 구조하면 아치를 말하겠다. 피사의 대성당이 보게 되면 아치의 연속이라고 볼 수가 있겠다.

아치는 위가 둥근 모습을 하고 아치가 길게 공간을 확보한 형태를 베롤 볼트라고 했다. 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들을 보게 되면 이렇게 둥근 천장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볼트 천장을 가진 긴 복도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 지어지게 된다. 천장을 돌로 된 볼트 천장으로 만들고 돌을 이 위에 얹어놨기 때문에 하중이 많아졌다. 이것을 견디기 위해서 기둥과 벽이 두꺼워지고 상대적으로 이 하중을 견뎌야 되기 때문에 창문을 크게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실내가 약간 어두운 형식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이 지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기독교 공인 이후에 로마의 공공 회당이었던 바실리카 형식의 예배당을 지었던 것과 대조가 되는데 바실리카 양식은 우선 천장이 나무로 되어 있고 그에 비해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은 볼트식의 모양을 가지고 하중을 견디기 벽과 기둥들이 두꺼워야 했다.

안에 공간 볼트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은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아치가 길게 공간을 확보한 채 펼쳐져 있는 것을 볼트라고 하고 베롤 볼트라고 합니다. 그런데 양쪽으로 교차되는 볼트를 그로인 볼트라고 하는데 그로인 볼트 위에 돔이 이렇게 세워지거나 아니면 이 위에 종탑이 만들어졌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 성당인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는 또 이렇게 종탑을 따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피사의 대성당과 피사의 사탑

우리가 알고 있는 피사의 사탑은 사실은 피사 대 성당의 부속물로 깔려 있는 종탑이다. 로마네스크의 앞쪽에 창은 원형으로서 장미와 차륜 그러니까 바퀴 모양의 어떤 구조물을 사용해서 채광이 될 수 있도록 빛이 들어오게 하고 그 모습을 좀 신성하게 만들어 놓았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은 동시대에 같이 있었던 사회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마네스크의 조각은 고전적 조형의 전통을 가진 남부 지방인 프랑스나 에스파냐가 전개의 중심지로 교회 건축의 일부를 이루는 주두나 팀펀(입구 상부의 아치를 막는 반원형의 석판), 또는 입구의 옆쪽과 제실의 외벽 등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조각이 가장 잘 대표적이다.

11세기 중엽 이후의 프랑스의 클뤼니 수도원에 속하는 일파의 활동 영향은, 중세조각의 양식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오턴, 베를레, 소류 등 클뤼니 파()의 사원은 오늘날 로마네스크 조각의 보고가 되어 있다. 신의 모습을 공공연히 표현하는 것은 종래의 기독교 미술 중에는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문맹의 농민에 대한 포교 장소가 되어 있던 교회에서는 사람의 모습을 한 신이나 성서의 이야기가 많은 곳에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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