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그의 생애

        - 아테네 학당을 그릴 때

1504년에서 1508년까지 피렌체에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화가로서의 활동을 마치고 마침내 그의 예술가로서의 최전성기를 맡게 되는 로마에 입성하게 되었다.

율리우스 2세는 16세기 초 피렌체에서 르네상스의 흐름이 로마로 오게 되는데 로마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예술의 조예가 깊었던 교황이다.
그는 교회의 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여러 예술가들을 로마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브라만테,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부르게 되는데 브라만테는 베드로 성당을 짓게 하고 미켈란젤로를 자신의 영묘를 조각하고 라파엘로를 불러서 자신의 집무실 4개의 방에 그림을 그리게 시켰다.
이때 라파엘로는 교황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피렌체에 그렸던 많은 그림들을 들고 갔었다.
그 그림을 본 교황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이미 1507년에 교황의 개인 집무실을 꾸미기 위해서 고용한 당대 최고의 화가들을 해고시켜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 집무실 벽화를 라파엘로에게 모두 맡겨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쫓겨난 화가들 가운데서는 그의 스승 페르지노도 있었다.
페르지노의 작품 천장화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그림들은 전부 뜯어내버리고 거기다가 새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4개의 방은 지금 라파엘로의 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이제 서명의 방인데 서명의 방 가운데 이와 같이 네 명의 신학, 철학, 예술, 법학을 상징하는 여신들을 그려놓고 각각의 네 벽에 그 주제에 맞게 신학에 관한 주제, 철학에 관한 주제, 예술에 관한 주제, 법학에 관한 주제를 각각의 주제에 맞는 그림을 그려 넣었고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이 아테네 학당인 것이다.

 

 

어테네 학당

아테네 학당 이 대작을 보면요. 원근법이 잘 적용된 궁전 같은 이 학당 공간 안에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총 54명이 망라되어져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선 제일 먼저 배경으로 두 신 대 그리스의 신들 중에 지혜와 이성을 대표하는 아폴론 신과 아테네 신이 그려져 있었다.

엄밀하게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위에는 사상가나 철학가들을 그려놓고 있고 밑에 쪽에는 수학자나 과학자 예술가들을 선별해서 그려놓고 있다.

라파엘로 자신의 얼굴과 그가 사랑했던 여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이제 라파엘로는 자신을 이처럼 오른쪽 끝에 벽면에 그려놓고 있었다.
라파일로 자신이 정면을 보고 있다. 알렉산더 시절에 굉장히 유명했던 두 명의 궁정화가 아펠레스와 프로토 제네스 중에서 아펠레스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화가의 얼굴에 화가인 자신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리고 왼편에 하단에 여인의 얼굴이 보인다.
이 여인의 얼굴은 고대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히파티아를 그린 것인데 이 히파티아의 모델이 되는 여인은 자신의 연인인 마르게리타 루티이다.

히파티아는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수학자이자 철학가였다.
지성과 미모를 경계했기 때문에 수많은 남성들의 청원을 받았다. 하지만 저는 이미 진리와 결혼했어요 라고 말하면서 수많은 청원들을 거절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결국 히파티아는 젊은 나이에 이단이라고 하는 그런 모함을 받고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라파엘로의 연인 이 여인이 바로 마르게르타 루티이다.
특히 수많은 성모의 얼굴 모델이 되었는데 기존의 성모들과는 달리 아름다우면서도 관능적인 성모의 그런 모델로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마르게타 루티는 라파엘로가 사랑했던 여인으로 라파엘로는 아주 사교적인 성격에다가 미남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수많은 여성들이 이 라파엘로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중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바로 제빵사의 딸이었던 마르게리타 루티였다..
당시에 라파일로는 화가 중에 화가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었던 반면에 제빵사의 딸은 신분적으로 매우 낮은 계급에 속했다.
그래서 이 마음 약한 라파엘로는 굉장히 사랑했지만 둘의 사랑이 알려지게 되면 후원이 끊기고 명성이 손상될 것을 염려해서 둘의 사랑을 비밀로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게리타가 자존심이 상해서 떠나버리고 떠나버린 그녀를 다시 붙잡기 위해서 라 포르나리나를 그렸다
그 작품 속 여인은 손모양이 정숙한 비너스에 손 모양을 하고 있교 머리에 진주가 장식되어 있다. 진주는 사랑의 결혼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다음에 여기 팔찌를 그렸는데 팔찌를 확대시켜보면 우르비노의 라파엘로라고 새겨져 있고 약지 손가락에 반지가 그려져 있다.
이 작품 속에서 이 세 가지 상징물 모두가 다 결혼식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언젠가는 너와 반드시 결혼하겠다라고 하는 라파엘로의 진심을 담아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을 보고 실제로 라르게르타가 감동해서 돌아왔고 둘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1년 후에 이 작품을 그린 지 1년 후에 37살의 나이로 라파엘로가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죽었고 마르게리타 루피는 라파엘로를 죽게 만든 여인이라는 비난을 또 엄청나게 들었다.


무엇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한 인물은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철학자이다.
그 모델이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이다.
즉 헤라클레이토스의 모델로 미켈란젤로를 그린 것이다.

사실 이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특별히 미켈란젤로가 거의 피해의식에 가까울 정도로 라파엘로를 싫어했다.
주로 자신의 그림을 모방했다는 거 그리고 브라만테와 더불어서 자신을 모함한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라파엘로와 친했던 인물들은 거의 그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데 미켈란젤로는 거기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라파엘로가 이 그림을 그릴 바로 그 시기에 바로 그 옆에 시스텔라 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가 그 유명한 천장벽화 천지창조를 그리고 있을 때였다.
그야말로 둘 사이에 라이브 의식이 절정에 달했던 그런 시기이다.
미켈란젤로는 혼자서 그 힘든 작업을 다 그려내고 기존에 있었던 보조자들마저도 다 잘라버렸다.

그런데 아테네 학당이 1511년에 완성되었을 때는 미켈란젤로의 모습은 거기에 그려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1512년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완성 되었다.
천지 창조가 완성이 되어서 개봉이 되어지는 그날 이 작품을 보고 라파엘로는 완전히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자신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그런 대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라파엘로는 그의 아테네 학당에다가 미켈란젤로를 그려 넣은 것으로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의 중앙으로 가면 그 유명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다.
이쪽에 보면 플라톤의 제자들이 있고 이쪽에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이 쭉 서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확대시켜 놓고 보면 플라톤은 손을 위로 올리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앞을 향하고 있고 플라톤은 아래의 세계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이상 세계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라고 하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라파엘로는 다빈치를 대단히 존경했기 때문에 플라톤의 모델로 다빈치를 그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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