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의 특징

        - 헬레니즘 미술의 특징

라오콘 군상,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포함하여 그리스 조각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의 대부분이 차지하는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에서부터 기원전 3030년경까지의 미술을 헬레니즘 미술이라고 부른다.

제국의 풍요한 수도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티오크,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등에서 나타난 헬레니즘의 건축물은 코린트 양식과 함께 건물이 더욱 높아졌고 웅장해졌다. 그리스 미술의 양식과 창의성은 오리엔트 왕국들의 규모 및 전통과 융합되었다.  이오니아식의 소용돌이 장식에다 잎사귀 모양을 덧붙인 모양의 주두를 가진 건축물은 전보다 화려하고 장대해져 갔다..

이 시기의 조각상들은 사실주의를 표방하여 더욱 사실적인 표현을 하면서 순간의 강력하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리스 미술은 대부분 동서양 문화가 만나면서 헬레니즘 시대에 변화를 겪게 되는데 조각의 형상은 격렬한 몸짓과 나부끼는 옷 주름으로 잘 표현하였고, 거칠고 격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여 초기 그리스 조각의 조화미와 세련미 대신하게 되었다.

 

        -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에서 본 역사적 사건

그리스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그리스 미술은 그리스의 정서를 담은 미술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 건설을 한 것은 그리스 미술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일어난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기원전 323)에서부터 악티움 전쟁(기원전 31)까지 약 300년간에 걸친 그리스 회화의 역사적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그리스 미술이 그리스를 넘어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이 시기의 헬레니즘 미술에서는 기존의 도리아, 이오니아 양식의 우아함에서 벗어나 장식적이고 화려한 코린트 양식이 유행했다.

그리스 고전주의 전통은 동방 오리엔트 국가들과 전통과 문화가 섞여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 헬레니즘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

 

멜로스의 비너스

        - 멜로스의 비너스 :

기원전 200년경에 만들어졌을 것이라 보이는 이 멜로스의 비너스상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높이는 202cm이고 현재 프랑스의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비너스 상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멜로스 섬에서 발견되어 <멜로스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클래식 시기가 훨씬 지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인데도 프락시텔렉스가 이루어놓은 업적과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옆에서 보도록 만들었는데 조각가가 아름다운 육체를 모델로 하면서 명쾌하면서 단순하게 그러나 거칠거나 모호한 구석 하나 없이 주요 부분을 구분해서 보여주는 것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 전의 아르카익과 클래식기 그리스 조각에 나타난 여성 입상은 대체로 옷을 입고 있거나 많은 장식을 하고 있으며, 그중 다수는 색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서 조각을 통해 감정의 흐름과 사람들의 정서에 푹 젖어가는 방향이 유행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여신이 아름다움의 신 비너스 같은 신화 속 여신이 누드 조각으로 재현되게 되었다. <밀로의 비너스>는 이 시대의 초기에 해당하고, <키레네의 아프로디테>는 고전주의적 경향이 큰 기원전 100년경의 원작에 의한 로마 시대의 모작으로 생각된다.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엄청난 역동성과 비장미를 표현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1596년에 발견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은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하였고 이 조각을 통해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은 조화와 균형보다는 극적이면서도 인상적인 효과를 더 중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 군의 목마(木馬)를 성 안에 들이는 것을 반대해 신들의 노여움을 샀기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2.4m의 거대한 조각은 큰 뱀에게 칭칭 감겨 막 질식해 죽어가는 라오콘과 불행한 두 아들의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섬뜩한 이 가족이 큰 뱀에게 죽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조각상은 그리스에게 해의 끝에 있는 로도스섬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클리투스 등 3명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풍경을 지배하는 건축

헬레니즘 시대의 건축은 페르가몬의 아크로폴리스의 유구에서 볼 수 있듯이 풍경과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지배하고 그 잠대함을 과시하는 것이 주된 경향이었다. 중요한 건물의 대부분은 마탈로스 Attalos 왕가가 번영했던 기원전 250-150년 사이에 세워졌는데, 성기 헬레니즘 조형()의 힘에 의한 공간의 지배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가 있다.

원래 불규칙한 언덕으로 되어 있던 지형이 많은 노력을 들여 여러 단의 테라스로 변화되고, 가능한 한 질서를 추구해 신진, 제단, 극장, 회랑, 도서관, 왕궁 등의 모뉴멘털한 구조물을 세웠다. 같은 식으로 질서에 의한 광대한 공간의 지배는 로도스 섬에 있는 린도스의 여신 아테나의 성역, 코스 섬에 있는 아스클레오피오스 성역 등의 건축 군에서도 명백히 볼 수가 있다. 대도시에 사는 유복한 시민의 주거도 점차로 호사스럽게 되어 모자이크로 장식되고, 주랑에 둘러싸인 안뜰이나 더 나아가 정원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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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 시대 미술의 특징

        - 그리스 시대 미술의 특징

서양 미술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스 미술을 이해하는 공부는 필수적이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시대 구분은 다음과 같다.

기하학 미술(Geometric) B.C 1000말~ BC 700 : 삼각형이나 지그재그와 같은 도형의 단순 반복적인 패턴

아르카익 미술 (Archaic) B.C. 700 ~ B.C. 480 : 인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묘사

클래식 미술 (Classical) B.C. 5C ~ B.C. 4C : 황금기로 사실적이고 감정 표현이 나타나는 인체 표현이 됨.

헬레니즘 미술 (Hellenistic) B.C. 323 ~ B.C. 146 :호화롭고 자유분방한 특징으로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등장 

 

말하자면  그리스 미술은 BC 10세기부터 BC 1세기 말까지의 약 9세기에 걸쳐 그리스와 남부 이탈리아·에게해 주변 지방 등지에서 번영하여 오리엔트 세계로 전파된 미술로 로마에 정복되기 전의 시기이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주변 지역에서 발달했던 문명의 영향을 받은 초기가 있었지만 그리스의 독자적 양식과 정신을 내포하며 눈부신 발전 했다.당시 그리스는 폴리스라 불리는 도시국가가 기반이었기에 언어·종교·문화를 공유하였지만 초기 건축 및 조각은 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폴리스들은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고 미술에서 차이를 보이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 주었다. 일정한 시기의 축제나 종교 의례,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 등을 통해 활발히 교류했다.

 

현세적(現世的)이고 합리적이며 인간 중심적인 그리스 미술은 종교와 관련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문화예술, 철학이나 과학에서도 많은 업적을 이룩했던 고대 그리스의 특징들을 그리스 미술에서 시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 잘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주 다루어진 주제는 신과 영웅, 그리고 인간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이었으며, 조화·통일·균형의 미가 전반적인 특징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인물 조각상을 보면 인체의 동세 표현이 사실적이면서도 동적이고 이상화된 인체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다.

 
 

       -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역사적 흐름

미케네 인들이 멸망 후 그리스 문명은 출발했으나 그다지 영광스럽지 는 못했다.

기원전 1000년 무렵에 여러 가지 그리스어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 에게해 주변에 살고 있었다. 주된 민족은 주로 그리스 본토 출신인 도리아인과 주변의 많은 섬들의 이오니아인이었다..

그들은 넓게 흩어져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 공동체가 모여 도시국가인 폴리스로 발전했다. 최초는 가난하고 미개했으나, 점차 강성해진 폴리스들은 이웃 국가들과 폭넓은 교역을 시작했으며 이집트와 근동의 민족 및 문화에 접촉하면서 풍부하고 완성된 예술형식을 갖추고 뛰어난 이들의 문명에 깊은 감명을 받아 영향을 받아 그리스 미술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 고대 그리스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

        - 조각 작품:

원시시대의 그리스 조각은 처음에는 미개했기에 제물 숭배의 시대를 거쳐서 점차로 조각 본래부터의 모양을 갖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옛 문헌에 따르면 그리스 초기시대에는 크소아논이라 불린 최초의 조각상은 나무를 잘라서 조각을 하여 신상으로서 신전이나 성지에 보존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양식은 극히 경직된 모양을 지닌 기하학적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나, 곧이어 나무로 만든 신상들이 석상으로 바뀌면서 이어서 대형 조각으로 발전해 갔다.

 

조각은 초기에는 거의 종교적 목적인 신전을 위하여 제작되었을 것이다. 이런 작품으로는 신전 본당에 놓기 위해 만들었던 신상, 성지에 세워져 있던 신들이나 영웅상(英雄像), 봉납상(奉納像), 신전 건축의 장식 조각, 묘지에 놓여 있던 사자(死者)의 상, 묘비 부조 등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은 아르카익기를 거쳐서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로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아테네에서는 5세기 후반부터 인체의 이상미를 추구하는 클래식기에 돌입하였다. 이때가 가장 전성기라 부를 수 있는 시기로 인상적인 조각들이 많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적 특성은 로마에까지 계승되었다.

 

       -빈사의 전사

기원전 490년경에 발달한 인물 조각으로, 아이기나 신전 동쪽에 표현된 일군의 설화적 조각의 일부이다. 이 조각상에서는 골격의 구조와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잘 표현함으로써 움직이는 인간의 형태가 자유자재로 표현되어 있다. 다만 눈과 입 그리고 턱수염만은 전통적인 규칙을 따르고 있다.  아르카익 시기 말기의 그리스 미술이 이집트나 수메르에 기반을 둔 커다란 전통과의 관계를 벗어나려는 노력, 즉 권력과 영원으로부터 율동과 자연스러움의 표현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빈사의 전사

       -청동의 포세이돈

460년 전후의 작품인 청동의 포세이돈 상은 클래식기 남성 조각상이다.

이 신상은 보이지 않는 적에게 벼락(혹은 삼지창)을 내려치는 순간을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무기로 신적 권위를 잘 표현한 청동상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포즈는 기원전 5세기의 위대한 조각가들이 대리석 작업보다 청동 작업을 왜 더 선호했는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앞으로 내디딘 포세이돈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균형을 유지와 몸통에서 머리로 중량감을 잘 유지하고 있는 운동감 등이 너무 멋지게 표현되었다. 콘트라포스토의 발전으로 이제 조각가는 아무리 격렬한 움직임이라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해답을 얻은 것이다

 

청동의 포세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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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소포타미아 문명 속에 나타난 미술 역사

        - 메소포타미아 시대에 나타난 미술 작품들의 특징

서남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생겨났던 옛 나라들의 미술을 메소포타미아 미술이라 부른다.

메소포타미아라는 말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 끼어 있는 비옥한 충적 층대(沖積層)를 그리스어로 '강의 사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인류 문화 3대 발생지로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불리고 있다. 그중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5000년에는 원시농경생활이 강의 상류 지역에서 영위되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미술 특징은 조각 작품이 적고 공예 감각과 기술이 뛰어났으며 그림을 프레스코 벽화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plaque with an image of ritual 의식 숭배의 이미지가 있는 명판

 

        -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미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 태어난 지역으로 비옥한 토양 덕분에 농경이 발달하였고, 북메소포타미아에는 B.C. 6000년경부터 원시 농촌이 형성됐다. 그 농촌은 소집락을 형성하며 벽돌로 만들어서 집을 짓고, 보리를 경작하고 가축을 사육하였으며, 직선적인 기하학 무늬의 채문토기를 창조했다.

사마라 기(B.C. 5100~B.C. 4500), 할라프 기(B.C. 4500~B.C. 4200)에는 그릇 모양이 다양화되어 독특한 광택을 가진 화려한 채문토기가 제작됐다. 이 무렵부터 남메소포타미아에도 원시 농촌이 만들어지면서 에리두 기에 접어들면서 신전이 만들어지고 우바이드 기(B.C. 4000~B.C. 3500)에는 관개농경(灌漑農耕)이 행해졌다. 우루크 기(B.C. 3500~B.C. 3200)에 원시 농촌은 읍으로 확장 발달되고 토기의 제작에는 녹로가 사용되었으며,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용도에 따라 기형에도 변화가 생겨(주구(注口) 토기,(주구(注口)토기 쌍구토기쌍구 토기, 대부토기[台付土器] 등) 문양이 없어지고 실용적으로 되었고 그림 문자도 발명되었다.

 

❤️ 메소포타미아 시대 미술의 의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초를 세운 최초의 사람들은 수메르인이었다. 그들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수많은 도시를 건설하고 인류 최초로 문자를 사용했으며 공통의 종교, 수학, 법률 그리고 건축법을 발달시켰다

수메르인들은 왕이 죽으면 저승에서도 사람들을 거느릴 수 있도록 모든 가족과 노예들은 물론 왕궁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함께 묻었기 때문에 부장품을 통해서 그들의 찬란했던 문명을 추측해 볼 수 있다.

 

❤️ 메소포타미아 시대 조각의 대표적인 작품

        -각 나라 별의 조각  유품의 특징:

1. 수메르인의 조소 유품(遺品)은 적다. 남메소포타미아에는 석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석조(石彫)는 제작되지 않고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그들의 조형 의욕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그 기술 습득과 연마할 기회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카파제··아스말·아슈르 등지에서 발굴된 조상(彫像)은 양손을 명치 부분에다 댄 직립상(直立像)으로 상감(象嵌)을 한 이상하게 큰 눈, 곱슬곱슬하고 긴 구레나룻을 단 것이 특색이다. 청동제의 우수한 작품 <<마니스 투수왕 입상(立像)>, <구데아 좌상(坐像)> 등 조소에 대한 관조와 조형 기법의 각 단계마다 진보한 작품을 계속 만들었다

2. B.C. 2000년경 왕위에 오른 함무라비가 만든 함무라비 법전의 정상부의 태양신 샤마슈와, 함무라비의 부조상으로 수사에서 출토된 함무라비 왕의 머리 부분 등은 구데아 모자를 쓴 채 표현되어 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한 왕의 조형은 뛰어난 것이다. 특히 함무라비왕 두부라고 전해지는 작품은 위엄과 풍격이 넘쳐 셈족풍()의 구레나룻과 표정에 노쇠한 그늘을 보여 날카로운 개성 묘사가 매력 있다.

 

3. 앗시리아 미술은 부조로 실내의 요벽(腰壁)을 장식했고 바빌론에서는 대로의 양측과 문·성벽을 이용하여 로제트 무늬의 띠와 사자·황소, 마르두크 신의 성수(聖獸)인 드래건(恐龍) 등을 부조로 표현하고 있다. 황색 신체에 적색의 갈기, 백색의 육신에 황색의 갈기라는 식으로 배색한 사자와 드래건과 짙은 벽청색(碧靑色)의 벽면에 제법 사실적(寫實的)인 조형 감각으로 걸어가는 동물을 표현하고 있다.

 

4. 앗시리아 미술에서 최고는 조소이라고 할 수 있다. 님루드에서 출토된 석회암으로 만든 <아슈르 나시르 팔 2세 상>은 드문 앗시리아 환조의 상으로는 완벽한 유품인데 미숙한 표현이 있지만 앗시리아인으로서 왕자라면 가져야 할 이상적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고, 당시 왕자의 의장 풍속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고 또 명문(銘文)을 흉부에 새겼기 때문에 역사적인 자료의 가치도 많은 작품이다. 이러한 환조의 상과 더불어 부조한 유품은 우수한 기술로 세련된 조형 감각과 관조가 투철한 사실적(寫實的) 능력을 가지고 뛰어난 작품을 많이 만들어냈다.

하나만 놓인 환조 상은 적지만 건축 내부의 요벽(腰壁)에 부조한 장식을 가득 메운 것이라든지 외문(外門)이나 내정 입구에 놓인 유익인면사자상(有翼人面獅子像)의 수호신 등 뛰어난 유품이 많다

아나톨리아 고원이나 시리아 뿐 아니라 앗시리아에서도 입구에 사자상을 배치하는 전통은 오래되었다.다. 건물 문 입구의 수호신의 표현 형식은 히타이트에서 시리아를 통해 영향을 받은 것이라 짐작된다.

히타이트 미술을 훨씬 능가하여 현저한 간격을 보여 주고 있는 앗시리아 유익인면수신(有翼人面獸身)의 수호신상은 조형 감각과 표현 형식의 고도한 예술성을 보여 주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장식풍인 말린 머리카락과 구레나룻 와 인면(人面)에 깊이 팬 눈과 코, 그리고 왕관과 날개가 날카롭고 명쾌하게 파내어서 의장화(意匠化)한(意匠化) 조형과 어울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유익인면사자상은 두르 샤르루킨 궁정 입구에서도 발견됐으나 이것은 더욱 발전하여 조형 표현의 기교와 관조가 진전, 세부까지의 의장화나 추상성이 높아져서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Ishtar gate from Baby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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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이집트 시대의 예술 세계 

       - 고대 이집트 시대 미술의 전반적인 특징

이집트의 미술품이라 할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다.

신전은 이집트 신들의 신전(神殿)은 '신의 영원한 집'이며, 회화는 현실 세계를 재현하는 수단이며, 조각은 신이나 인간의 영혼이 깃들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대 이집트의 미술은 목적 자체가 실효적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의 미술품은 제작자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았고 일정한 규칙이 있는 이유는 바로 신을 표현한다는 까닭이다.

 

지리적인 요소가 이집트 미술의 특성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막과 바다로 보호되어 거의 2000년간 외국이나 타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고 나일강은 유리한 농업 조건을 제공하여 미술과 공예가 발달할 수 있는 안정된 생활환경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는 예술 활동의 재료가 되는 광물과 좋은 석재를 잘 구할 수 있었지만 목재가 부족하여 레바논, 소말리아, 열대 아프리카 등지로 원정을 다녀야 했다. 아런 원정은 힘든 과정이었지만 결국 이집트의 문명을 풍부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고대 이집트 미술은 이집트 문화의 종교적 신앙을 반영하여 지상의 삶은 내세의 영생에 비하면 잠시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고에서 출발했다. 신분과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내세에 자신들이 지니고 갈 유용한 장식물들을 수집했으며 매장과 장례에 최대의 관심을 쏟았다.

 

 

고대 이집트의 미술 활동에서 미술 제작에 종사하는 자는 모두 국왕의 보호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예술활동의 역사는 이집트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 특징이 있다.

 

        - 고대 이집트 시대의 시대별 미술 특징

1. 선왕조시대-기원전 2925년까지 이집트 제1왕조가 성립하기 이전 시기로 그리는 기술과 회화기법은 상() 이집트 암벽화에 나오는 동물화라든가 배 타는 장면, 사냥 장면과 아울러 더욱 세련된 히에라콤폴리스의 무덤벽화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도기는 이 시기의 특유한 산물로서 세련된 기법과 대담한 장식을 하였고 석재를 이용한 작업은 선왕조 시대 후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조각은 작은 동물상이나 원래 눈 화장 용구로 쓰였던 석판 팔레트의 부조장식 따위에서 출발했다.

 

2. 왕조시대-이집트 문화의 다양한 흐름이 모여 단일문화를 이룬 기원전 3100년경 상()이집트와 하() 이집트가 통합된 시기이다.

 

 

 

나르메르왕의  팔레트

기원전 2925~2575년경 초기 왕조 시대의 가장 유명한 미술품은 ‘나르메르왕의 팔레트로서, 왕이 적들을 물리치는 장면을 그려 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고 있다. 이 부조는 머리는 옆모습으로 그렸으나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어깨가 정면을 향한 반면 상반신은 절반 정도 옆으로 기울었고 다리는 또다시 옆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개별 장면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파라오를 신성하게 표현한 점에서 오랜 기간 이집트 미술에 나타나는 인물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인물을 중앙에 배치하고 있고 인물의 크기로 신분의 차이를 표시했다. 기원전 2000년대 말에 아마르나 양식이 등장할 때까지 이런 표현은 계속되었다.

 

3. 고왕국시대-기원전 2575~2130년경 이후로 죽은 자가 거주하는 무덤과 신이 거하는 신전에 석재가 쓰이기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의 도시는 대부분 나일강의 범람권이기에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다소 떨어져 있는 신전이나 무덤이 주로 보존되어 있다. 나일강의 진흙을 구워 만든 진흙 벽돌은 선왕조 시대부터 이미 일상적인 건축재료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요새나 신전 경내 및 도시의 성벽, 왕의 거처나 신전 부속건물 등에도 쓰였다.

 

대규모 피라미드를 짓고 그 안에 군주의 시신을 보관하는 방을 두고 주변에는 여러 무덤과 신전으로 이루어진 건물군을 배치한 이집트의 묘소 건축은 대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사카라에 있는 제3왕조의 2대왕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알려진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파라미드이다. 이 피라미드는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6층의 계단을 포개 올린 형태이며 내부에는 사각으로 석회석을 붙인 성벽을 둘러 그 안에 왕궁과 같은 모조 건축물을 지어놓았다.

피라미드 건축의 고전적 형태를 보여주는 가자에 있는 유명한 대건축물들 중 146.7m의 제4 왕조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걸작이다.

받침돌을 대어 높이 올린 대열주와 압력을 줄이기 위해 위층에 5개의 빈 방을 올린 화강암 왕실도 특징적이며 왕의 두상과 사자의 몸통으로 조각된 대형 스핑크스는 카프레의 피라미드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피라미드에 사용된 벽돌은 정사각형의 면적이 5.3ha에 달하면서도 각 변의 길이는 30cm 이상의 오차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고 4면의 방향은 동서남북에 정확히 일치한다.

 

4. 중왕국시대-기원전 1928~1600년경, 예술의 부흥이 이루어진 시기로 정치가 안정된 중왕국 시대부터였다.. 이때는 고왕국시대 인물상의 위엄 있는 무표정과는 대조적으로 근심이나 비애의 감정이 잘 나타나 있는 왕들의 초상 조각이 주목을 끌었다.

인물과 문구를 배치하는 데에 여백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세련미를 한층 높아지는 시기로 파이윰 오아시스 부근의 피라미드와 신전들의 규모는 더 작아졌고, 주로 말린 벽돌과 석재포장을 사용했다. 그러나 특히 부조와 회화는 뛰어난 기량을 보였는데, 이 시기의 가장 훌륭한 부조작품은 테베의 다이르알바리에 있는 멘 투호 테프 2세의 무덤과 카크나크에 있는 세소스트리스의 작은 사원에서 볼 수 있다.

 

5. 신왕국시대 및 말기 왕조시대-기원전 1567~1085년으로 다시 한 차례의 정치적 격변기를 거친 뒤 신왕국시대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예술의 개화가 이루어진다.

왕실무덤들은 도굴과 훼손을 피하기 위해 산봉우리가 우뚝 솟은 테베의 궁벽한 골짜기에 모아 세워졌다. 신전, 사당, 암벽 무덤, 명문 비석 등이 나일강 계곡을 따라 이집트와 누비아 곳곳에 건립되었다.

이른바 ‘왕들의 계곡’에는 입구는 숨겼고 정면 현관에 주랑을 설치하고 명문을 새겨 웅장하게 만들기도 하고 종종 이리저리 얽혀 복잡한 미궁을 이루고 있으며 회랑 내부에는 가짜 문이 달린 사당을 만들었다. 숨기는 방법은 석회석 암벽을 깊이 파서 무덤을 만들어 아무 외부 구조물 없이 다만 무덤 입구의 암벽 표면에만 표시해 놓았다.

콤 옴보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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