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 미술

        - 바로크 시대 미술의 특징

바로크 시대와 바로크 스타일은 17세기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발전한 예술 양식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 미술의 시대적 배경

17세기 유럽의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고 청교도 혁명과 계몽주의 등의 영향으로 르네상스 시대와는 다른 양식 발전했습니다.

시대적 범위는 16세기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발전한 예술 양식입니다.

사회·문화적 배경

종교적 영향: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 증대, 종교 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강조하는 예술 작품 증가

정치적 변화: 절대왕정의 발달, 귀족 계급의 후원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예술 작품 제작

철학적 사조: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감성적이고 역동적인 표현 추구,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성과 감성의 조화 모색

 

 

❤️ 바로크 시대 미술의 예술적 특징

1. 극적인 표현

  • 강렬한 대비와 역동적인 구도를 통해 극적인 효과 추구
  • 감정의 표현을 중시하며 관객의 감성에 호소

2. 화려함과 장식성

  • 풍부한 색채와 복잡한 장식을 사용
  • 웅장하고 화려한 분위기 연출

 

 

 

카라바조의  " 성 마태오의 소명 "

3. 빛과 그림자의 대비

  • 키아로스쿠로(명암대비) 기법을 통해 깊이감과 입체감 강조
  • 빛을 통한 극적인 효과 창출

*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는 이탈리아어로 '밝음'(chiaro)과 '어두움'(oscuro)을 의미하는 단어의 조합으로, 미술에서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기법,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의 소명", 렘브란트의 "야경"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성 요셉의 꿈",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

 

4. 역동성과 운동감

  • 인물이나 사물의 동적인 포즈와 구도를 통해 생동감 표현
  • 곡선의 사용으로 유동적이고 활기찬 느낌 전달

5. 종교적 주제의 강조

  • 가톨릭 교회의 영향으로 종교적 주제의 작품이 많이 제작됨
  • 성인들의 삶과 순교를 극적으로 묘사

 

바로크 시대의 예술은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변화를 반영하며 감성적이고 역동적인 표현을 통해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나타났으며, 오늘날까지도 바로크 예술의 영향력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 바로크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와 작품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인 렘브란트와 베르메르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인 렘브란트와 베르메르의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이 두 화가의 대표작과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

 

" 야경 "(The Night Watch) 은 렘브란트

대표작: "야경"

"야경"(The Night Watch)은 렘브란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그림의 정식 제목은 "프란스 바닝 코크 대위의 민병대 출정"입니다.

크기: 363 x 437 cm의 대형 그룹 초상화

제작 연도: 1642

특징:

극적인 명암대비(키아로스쿠로)를 사용하여 인물들의 움직임과 긴장감을 강조

중앙의 밝은 부분과 주변의 어두운 부분의 대비가 뚜렷함

인물들의 동적인 포즈와 표정을 통해 생동감 있는 장면 연출

복잡한 구도와 다양한 인물 배치로 깊이감과 입체감 표현

 

대표작: "자화상" 시리즈

렘브란트는 생애 동안 약 100점의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의 예술적 성장과 개인적 성찰을 보여줍니다.

특징: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통해 자신의 내면 탐구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얼굴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감정의 깊이 표현

두꺼운 물감 사용으로 질감과 입체감 강조

 

렘브란트의 주요 기법:

키아로스쿠로(명암대비): 극적인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분위기 조성

임파스토(impasto): 두껍게 물감을 바르는 기법으로 질감 표현

심리적 표현: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표현

 

 

 

요하네스 베르메르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베르메르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북구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립니다.

크기: 44.5 x 39 cm의 소형 초상화

제작 연도: 1665

특징:

  • 소녀의 신비로운 표정과 시선이 관객을 끌어들임
  • 푸른 터번과 진주 귀걸이의 대비가 인상적
  • 부드러운 빛의 처리로 소녀의 얼굴과 진주의 광택을 섬세하게 표현
  •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구도로 소녀에게 시선 집중

 

 

대표작: "우유를 따르는 여인"

일상적인 장면을 아름답게 포착한 베르메르의 대표작입니다.

제작 연도: 1658

특징:

  • 창문에서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이 장면을 밝게 비춤
  •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동작을 정교하게 포착
  • 정물화적 요소와 인물화의 조화
  • 제한된 색채 사용으로 차분하고 조화로운 분위기 연출
  • 베르메르의 주요 기법:
  • 카메라 옵스큐라 사용 추정: 정확한 원근법과 빛의 표현
  • 점묘법: 미세한 점들로 색채와 질감 표현
  • 제한된 팔레트: 주로 청색, 황색, 적색 계열의 색상 사용

베르메르는 델프트라는 작은 네덜란드 도시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작품은 이 도시의 일상적인 모습을 아름답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두 화가의 작품을 비교하면, 렘브란트는 극적이고 역동적인 표현을, 베르메르는 고요하고 섬세한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주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화가 모두 빛의 사용에 탁월했지만, 그 접근 방식은 매우 달랐습니다. 이러한 차이점과 각자의 독특한 기법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크 미술을 공부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반응형

❤️ 바로크 시대 미술

        - 바로크 시대 미술의 어원

어원은 일그러진 진주를 의미하는 포르투갈어로 'pérola barroca'에서 유래된 단어이며 프랑스의 여행가인 샤를 드 브로스의 편지나 생시몽 공작의 회고록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크는 서양 예술사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용어이자 예술 사조의 한 유형이기도 한데 뜻은 왜곡된 삼단논법, 혹은 불협화음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소리를 의미한다. 진주와 같은 르네상스를 망쳤다는 의미로 후대 비평가들이 17세기 미술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이다. 바로크 양식은 군주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지원받은 궁정적인 바로크와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발현한 부르주아적 바로크로 나뉘어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작품은 원근법을 강조한 그림이고 왼쪽 바로크 그림은 뭔가 작품의 크기도 그렇고 작품에 등장한 인물 수도 그렇고 과할 정도로 과장된 그림이다.
즉 오른쪽 르네상스가 조화와 균형 위에 중점을 둔 작품이라면 왼쪽 바로크는 과장 감성적이고 극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 바고크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 최초의 바로크 미술가 카라바조

최초의 바로크 미술가는 카라바조라고 간주되고 있다. 

메두사, 유디트 등 대표작을 그린 카라바조는 다채롭고 화려한 르네상스 회화들과 달리,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극단적으로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의 개척자로서 그의 회화 기법은 루벤스, 렘브란트 등 후대의 바로크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남겼다. 

그는 깊은 어둠의 배경과 주인공 주변의 환한 빛의 대조를 통해 인물을 강조하고 이렇게 빛을 이용해 그림 안에서 극적 연출을 하였다.  또 역동적 신체 표현이나 사선 구도와 같은 동적인 구도를 통해 그림을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려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은 아주 생생한 사실적 표현을 가능케 하였다. 그리고.그리고 현실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 내었다면 바로 그의 사실주의는 현실엔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추한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사실주의였다.

 

 

       -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이용한 안니발레 카라치

또 다른 화가인 카라치가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의 작품을 연구해 당시 매너리즘을 극복하려고 하였고 그 방법을 찾아냈다. 아이러니한 것은 매너리즘 작가들이 르네상스 작가들을 뛰어넘기 위한 방법으로 복잡하고 기교적인 그림을 그렸던 반면 카라치는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전성기 르네상스 작가 라파엘의 고전적 아름다움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카라치 작품

카라치가 선배인 마테냐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
마테냐 그림과 마찬가지로 카라치 역시 예수의 발바닥을 보여주어 예수의 고난과 희생을 알려주는 것이 이 그림의 목적이다. 이 두 화가가 표현한 방법은 확실히 다르다. 만테냐의 그림을 보면 예수님의 발바닥에 박힌 상처가 하고 경건해지는 느낌이 느껴지는 반면 카라치의 그림을 보면 너무나 적나라하게 피의 표현 모습 부분과 예수 그리스도가 아주 비좁아 보이는 공간에서 자세마저 허리가 틀어져 있어 아주 불편해 보인다. 이는 보는 사람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는 것과 동시에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었다.

 

 

       -  라스메니냐스 시녀를 그린 벨라스케스

스페인은 바로크 시기 벨라스케스라는 훌륭한 화가를 탄생시켰다.
색감은 베네치아 화풍에서 영향을 받았고 어두운 배경 부분은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다.
특이한 것은 표정인데 딱 봐도 좀 성깔 있어 보이는 교황의 모습을 통해 교황이라 해도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와 바로 그의 차이이다. 만약 르네상스 시대 화가가 교황을 그렸다면 분명히 미화해서 그렸겠지만 바로크 시대 화가들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더라도 보이는 대로 인물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 그림을 그렸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약화된 지상의 가치, 인간이 지닌 감정, 상상력 등에 대한 가치를 반종교적인 입장에서 받아들였다.

서양 미술사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라스메니냐스 시녀들이다.
마치 스냅 사진을 찍듯 순간 상황 포착이 매우 잘 표현되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물들의 시선으로 그림 안의 인물들이 서로 본다거나 화가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인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에서 공간이나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제로 있는 것이지만 이 장면 자체는 온전히 벨라스케스가 만들어낸 것으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가 공간과 장면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창조자로서 예술가를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을 멀리서 보면 굉장히 자세히 그린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여기 공주의 상체 부분만 확대해서 보면 특히 여기 이렇게 이쪽에 공지의 머리 장식 부분을 보면 대충 붓질 몇 번으로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이전 작가들처럼 윤곽을 뚜렷하게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채워서 그린 것이 아니라 붓질 몇 번으로 색을 칠해 형태를 표현한 것이다.

 

 

 

       -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루벤스의 그림

네덜란드 화가 중 루벤스이다. 사실 루벤스는 독일 출생이나 당시는 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이었고 루벤스 자체가 워낙 네덜란드를 사랑했기에 되게 네덜란드 화가로 본다.
루벤스는 이후 살펴볼 렘브란트에 비해 죽을 때까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편히 살다 간 화가이다.

루벤스는 신교도가 많은 네덜란드에 있었지만 반 종교개혁주의자였다.
반 종교 개혁은 종교 개혁으로 세력을 잃은 카톨릭이 잃어버린 세력을 회복하기 위한 자성의 목소리로 일으킨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운동이다.
이런 반 종교 개혁자였던 루벤스는 다른 네덜란드 화가들에 비해 성화를 많이 남겼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는 그의 성화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일본 후지티비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로 우리에게 친숙할 수도 있는데요.
사실 이 애니메이션은 19세기 영국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화가를 꿈꾸는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의 평생소원은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만 공개된다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러 성당으로 가지만 너무 어두워서 결국 그림을 보지 못하고 네로의 애견 파트라슈와 추위에 견디지 못해 죽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로 여기 나오는 루벤스의 그림이 바로 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이다.

 

 

       -  렘브란트의 역동적인 그림

카톨릭 성향의 루벤스와 달리 렘브란트는 개신교였고 이 영향으로 그의 작품 중 성화의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다.
성화를 그리는 것이 성스러운 행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개신교에서 렘브란트가 주로 그렸던 것은 초상화로 특히 자화상의 경우 100편이 넘는다.
이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대표급 화가가 된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시를 지켰던 민병대 초상화를 의뢰받아 작품을 완성했는데 모두 똑같이 목숨을 걸고 암스테르담시를 지키는데 누구는 빛을 잔뜩 받아 주인공처럼 표현된 반면 누구는 어두컴컴한 배경에 묻혀 있어 등장인물들의 비중이 너무나 극명하게 갈렸기 때문에 이 초상화를 주문했던 민병대 단체는 불평했고 엄청난 욕을 먹었다.
오늘날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지만 당시엔 잘 나가는 렘브란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작품이 된다.
그러나 미술사적으로 이 그림을 보면 바르코 스타일의 극적인 연출과 역동적 장면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이 작품에 표현된 빛과 어둠의 사용은 오늘날 렘브란트의 조명 효과를 통해 주제가 한눈에 들어오고 감상자인 나도 그 속에 있는 듯한 사건에 동참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