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시대 회화는?

        - 로마 시대 회화의 특징

       * 로마 시대부터는 실용적인 면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취미와 미적 관심에 따라 귀족이나 시민들이 회화, 조각, 공예품을 만들게 하거나 직접 고용하여 소장하기 시작했다. 

         

       *  로마의 회화는 헬레니즘 회화의 수용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헬레니즘 회화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다가 기원후 79년에 일어난 베수비오산의 분화(噴火)로 돌연히 매몰된 폼페이 및 헤르쿨라네움에 남아 있는 벽화를 통하여 헬레니즘 시대 및 로마 시대의 회화를 알아낼 수가 있었다.

건축이나 조각처럼 회화 분야에서도 같이 기원전 1세기 이후 많은 그리스 화가가 부유한 로마인을 위하여 고용되었고 로마인들의 저택이나 별장을 조각, 벽화 등등으로 꾸몄다. 프레스코 및 모자이크에 의한 그들의 화풍은 헬레니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감각적이며 신비적이고 산문적인 주제가 사실적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 로마 시대의 미술의 특징은 헬레니즘 미술의 개인주의가 나타났고 특정 계급의 귀족성은 로마 사회 안에서 발현되어서 더욱 발전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귀족들의 개인주택을  많은 미술작품으로 채워 넣는 미술관화 성향을 나타내었미술에 대한 개개인의 취향이 다양화되게 되었다. 이것은 더욱더 로마시대의 회화 발전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귀족들의 주택 안을 모자이크 기법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벽화로 장식되고 헬레니즘 회화나 조각을 작가들이 따라 하여 만들어 놓는 유행이 있었다.

 

- 도시 생활자들 간에 있어서의 ‘유행’이 큰 역할을 하면서 회화나 조각, 공예에 큰 영향을 주어 로마 경제가 윤택하게 되고 더욱더 발전하게 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 시대의 회화는 건축 내부공간에 종속되어 있는 한 부분으로 보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화화도 신화적인 풍경화로 변천되는 등 회화 공간은 스케노그라피아에서 비롯된 고대 원근법콤펜디아리아로 당시 호칭되었던 묘사법으로 표현되어 분위기나 환경과의 일치를 도모하게 되었다

 

 

❤️ 로마 시대 회화에 나오는 기법

- 프레스코 벽화: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채색하고 마르면서 색이 고착되는 프레스코 기법이 벽화에 사용되었다. 아울러 완전히 마른 회벽에 석회수와 물감을 풀어서 그림을 그리는 세코 기법도 사용되었다.

- 그림 스케치에 돌이나 유리, 색대리석, 타일 같은 것을 모르타르나 시멘트로 고정시키는 모자이크 기법도 많이 사용되었다.

 

- 고대 원근법 스케노그라피아: 소실점을 활용해서 깊이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스케노그라피아는 고대 원근법이다.

로마 시대 회화는 아니지만 잘 활용한 대표적인 예시 그림으로 건축가 브라만테가 밀라노의 산 사티로 성당 내부의 계단의 병이 가로로 막혀있는데도 신도들의 좌석에서 볼 때는 마치 빈 공간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제단 뒤의 벽을 그렸다.

 

- 콤펜디아리아: 생략하면서 빠른 필치로 그려내는 기법으로 리비아 빌라의 벽화와 같이 이탈리아 고대 미술의 걸작으로 불리는데 여러 나무와 꽃, 새가 어우러진 사실적인 정원이 나온다.

 

 

❤️ 로마 시대 회화의 대표적인 작품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 화가 필록세노스 <이수스의 전쟁>을 모자이크 화한 작품

이수스의 전쟁

이 작품은 고전 말기의 양식을 전하는 귀중한 작품이다. 폼페이에서 나온 벽화로 기원전 89년, 현재는 나폴리에 있는 국립 미술관에 있다.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친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리아의 이수스 전투 중 한 장면을 다루었다. 헬레니즘 경향의 그림을 폼페이의 거실 바닥에 복제한 정밀한 모자이크 작품으로 크기가 엄청 크다.

 

       - <디오니소스의 밀의>

프레스코로 유명한 이 작품은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에, 이탈리아적인 취미를 가미한 새로운 양식이었다. 디오니소스의 밀의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믿었던 밀교(密敎)인데, 화려하고 붉은색의 배경에 신앙생활의 신비적인 경향이 묻어나 있다. 

 

   - <텔레포스의 유아>

이 작품에는 아르카디아를 상징한 거대한 여신의 발 밑에서 텔레포스가 무심하게 사슴의 젖을 마시는 자태와 그의 아버지 헤라클레스의 강인한 자태가, 인간적 감정을 녹여내는 과정을 통해 회화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 <리비아 빌라의 벽화>

리비아 빌라의 벽화

마치 정원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벽화로 이 정원 그림에 등장하는 새는 69 종이 넘고 또 수많은  꽃들이 피어 있고 여러 종류의 열매가 열려 있는 그림이다. 아우구스투스와 관련이 있는 벽화라는 설이 있는데 아직도 연구 중이다. 현재 리비아의 빌라 식당에 있었던 벽화를 모두 뜯어 마시모 궁으로 옮겨 복원시켜 놓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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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시대 미술의 특징

        - 로마 시대 미술의 특징

로마 미술은 북쪽의 에트루리아(에트루리아 지방은 에트루리아 혹은 투스키아(Tuscia)라고 불렀다. 이것이 나중에 토스카나라는 이름으로 현대까지 남았다.) 미술과 반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 미술의 영향을 받아서 싹이 트고 발전한 것이다.

로마는 능률적이고 조직력이 있으며 실제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현실적·행동적인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았다

BC 2세기 후반에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는 엄청난 수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로 가져왔다. 

많은 그리스 출신의 예술가들이 로마에서 옛날의 그리스 명작을 따라서 작업을 했다.

로마의 리얼리즘 미술은 신전을 건축하고 조각이나 회화 등을 표현하는데 그리스의 형식을 빌려와 만들면서도 현실적이고 능률적인 것을 중요시하는에트루리아적이다.

처음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에서 출발했지만 공화정 말기 이후 헬레니즘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얻은 그리스의 영향은 로마 세계를 풍미하고 소위 '그레코로만(Greco­Romna) 시대'를 가져오게 했다.

 다수의 그리스 예술가가 로마에 초빙되어 그리스 명작을 모방한 로마는 그 전 BC 2세기 후반에 그리스를 정복한 이래, 매우 많은 수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로 운반되었고 청동의 원작은 대리석에 되새겼고, 그것들은 로마인의 취미나 헬레니즘 시대의 자연주의적인 경향으로 약간 변경되어 갔다. 그림은 이러한 경향은 비슷해서 유명한 폼페이의 벽화에도 헬레니즘 그림을 따라하고 비속화가 눈에 띄었다.

로마 시대에 초상 조각이 개성적인 표현하는 것이 발달하고, 판테온 같이 거대하고 실용적인 공공 건축이 계속 만들어진 것 역시 헬레니즘 시대 정신과 에트루리아적 정신과의 융합의 결과이다.

로마 미술은  헬레니즘 시대 정신과 에트루리아적 정신 이 두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발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로마 시대의 역사적 흐름

기원전 8세기에 테베레 강변, 파라티노의 언덕을 중심으로 일곱 개의 언덕에 살며, 소규모 로마는 시작되었다. 오랜 에트루리아 문명을 멸망시키고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공화정치 형태를 확립하고 거대한 제국의 중심지로 급속히 성장시키며 기원전 3세기에는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지배했다.

대제국을 완성했던 로마 제국은 영국에서부터 이집트, 스페인, 남부 러시아에 이르는 영역을 형성했다.

이 거대한 제국은 200년이 훨씬 넘기며 강한 지배력을 떨치며  평화로운 시대를 이어갔지만 기원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현재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영광스러운 로마는 저물어갔다.

 

❤️ 로마 시대 미술의 의의

79년에 일어난 베수비오산의 분화(噴火)로 돌연히 매몰된 폼페이 및 헤르쿨라네움에 남아 있는 벽화를 보면 헬레니즘 회화의 수용하며 로마의 회화는 시작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그리스 화가가 부유한 로마인을 위해 건축이나 조각처럼 저택이나 별장을 그림으로 꾸몄다. 헬레니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 프레스코 및 모자이크에 의한 그들의 화풍은 감각적이며 신비적이고 산문적인 주제가 사실적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헬레니즘 회화과 연결된 로마 시대의 회화는 건축에도 좋은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1양식 - 원근법을 쓰고 있기 때문에 벽면이 부각(浮刻)된 것 같은 표현으로 벽면이 대리석으로서 중앙부와 소벽(小壁), 벽의 아래 부분에 둘러댄 판자의 세 가지로 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방법이다. 이 양식은 이미 헬레니즘 시대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하였고, 기원전 80년경가지 쓰이고 있었다.

2양식 - 공화제 시대 로마에서 많이 쓰인 양식으로 제1양식의 복잡화, 이오니아식이나 코린트식의 기둥의 사용, 쑥 들어가는 느낌을 주고,  다른 방이 계속 잇달아 있는 듯한 환각을 일으키도록 그려져 있다.

3양식 - 제정 초기 양식,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기에 널리 사용된 양식인데 복잡한 원근법과 화려한 세부 장식의 사용을 하였고 좌우의 기둥 사이에서는 중정(中庭)이 보이고, 멀리 아름다운 건물을 그리는 양식으로 이집트의 모티프를 많이 그렸다.

4양식 -  63년의 지진 이후의 건축 양식으로 장식이 화려하고 환상적인 표현을 지닌다.

 

 

 

❤️ 로마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

        - 로마의 판테온 :

판테온

아치를 이용한 로마 건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잘 나타난 건물이다. 

또한 다리나 수로 기둥 사이클 연결하기도 했으며 이치를 사용해서 한가운데가 고급은 천장인 궁동 만들 수 있도록 한 토목공학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인 쐐기 모양의 돌로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공법을 사용한 건물이며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건물이 바로 판테온이다. 

로마 건축사상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는 판테온은 고대 로마 최대의 원개 건축이다. 현재 남아 있은 이 신전은 기원 120년경까지 하드리아누스제(帝)에 의하여 세워졌고 로마 시대의 신전이었고 지금도 예배를 위한 사원으로 쓰이고 있다. 이 신전은 초기 기독교 시기에 개조되었는데 궁동 꼭대기에 안에서 하늘을 볼 수 있는 거대한 구멍이 나 있어서 창문이 하나도 없지만 위로부터 풍부하고 고른 빛이 들어오는 신비한 공간이라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 로마의 건축

콜로세움·판테온·수도(水道)·목욕장 등은 로마 시대를 대표하는 거대한 건축으로 가장 대표적인 폴로 로마노 가까이에 있는 콜로세움을 들 수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이 건물은 기원72년에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짓기 시작했고 그 아들 티투스 제(帝)가(帝)가 80년에 완성한 타원형 모양의 넓고 큰 투기장(大鬪技場)으로서 높이가 48.5m이고 외관 4층의 대건축이다.

 

외관이 아름다운 그리스 건축과 다르게 실용성을 중시한 로마인은 내부의 거주성(居住性)에 중점을 두고 로마 건축은 내부 공간의 충실을 기하고 있다

로마 건축은 실용성을 생각하고 주제를 다양화하여 만들었다.

 

 

콜로세움

가장 대표적인 유적(遺跡)으로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바실리카, 카라칼라 황제의 욕장,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탑, 가르드의 다리 등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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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의 특징

        - 헬레니즘 미술의 특징

라오콘 군상,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포함하여 그리스 조각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의 대부분이 차지하는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에서부터 기원전 3030년경까지의 미술을 헬레니즘 미술이라고 부른다.

제국의 풍요한 수도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티오크,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등에서 나타난 헬레니즘의 건축물은 코린트 양식과 함께 건물이 더욱 높아졌고 웅장해졌다. 그리스 미술의 양식과 창의성은 오리엔트 왕국들의 규모 및 전통과 융합되었다.  이오니아식의 소용돌이 장식에다 잎사귀 모양을 덧붙인 모양의 주두를 가진 건축물은 전보다 화려하고 장대해져 갔다..

이 시기의 조각상들은 사실주의를 표방하여 더욱 사실적인 표현을 하면서 순간의 강력하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리스 미술은 대부분 동서양 문화가 만나면서 헬레니즘 시대에 변화를 겪게 되는데 조각의 형상은 격렬한 몸짓과 나부끼는 옷 주름으로 잘 표현하였고, 거칠고 격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여 초기 그리스 조각의 조화미와 세련미 대신하게 되었다.

 

        -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에서 본 역사적 사건

그리스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그리스 미술은 그리스의 정서를 담은 미술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 건설을 한 것은 그리스 미술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일어난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기원전 323)에서부터 악티움 전쟁(기원전 31)까지 약 300년간에 걸친 그리스 회화의 역사적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그리스 미술이 그리스를 넘어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이 시기의 헬레니즘 미술에서는 기존의 도리아, 이오니아 양식의 우아함에서 벗어나 장식적이고 화려한 코린트 양식이 유행했다.

그리스 고전주의 전통은 동방 오리엔트 국가들과 전통과 문화가 섞여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 헬레니즘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

 

멜로스의 비너스

        - 멜로스의 비너스 :

기원전 200년경에 만들어졌을 것이라 보이는 이 멜로스의 비너스상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높이는 202cm이고 현재 프랑스의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비너스 상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멜로스 섬에서 발견되어 <멜로스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클래식 시기가 훨씬 지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인데도 프락시텔렉스가 이루어놓은 업적과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옆에서 보도록 만들었는데 조각가가 아름다운 육체를 모델로 하면서 명쾌하면서 단순하게 그러나 거칠거나 모호한 구석 하나 없이 주요 부분을 구분해서 보여주는 것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 전의 아르카익과 클래식기 그리스 조각에 나타난 여성 입상은 대체로 옷을 입고 있거나 많은 장식을 하고 있으며, 그중 다수는 색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서 조각을 통해 감정의 흐름과 사람들의 정서에 푹 젖어가는 방향이 유행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여신이 아름다움의 신 비너스 같은 신화 속 여신이 누드 조각으로 재현되게 되었다. <밀로의 비너스>는 이 시대의 초기에 해당하고, <키레네의 아프로디테>는 고전주의적 경향이 큰 기원전 100년경의 원작에 의한 로마 시대의 모작으로 생각된다.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엄청난 역동성과 비장미를 표현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1596년에 발견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은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하였고 이 조각을 통해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은 조화와 균형보다는 극적이면서도 인상적인 효과를 더 중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 군의 목마(木馬)를 성 안에 들이는 것을 반대해 신들의 노여움을 샀기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2.4m의 거대한 조각은 큰 뱀에게 칭칭 감겨 막 질식해 죽어가는 라오콘과 불행한 두 아들의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섬뜩한 이 가족이 큰 뱀에게 죽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조각상은 그리스에게 해의 끝에 있는 로도스섬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클리투스 등 3명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풍경을 지배하는 건축

헬레니즘 시대의 건축은 페르가몬의 아크로폴리스의 유구에서 볼 수 있듯이 풍경과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지배하고 그 잠대함을 과시하는 것이 주된 경향이었다. 중요한 건물의 대부분은 마탈로스 Attalos 왕가가 번영했던 기원전 250-150년 사이에 세워졌는데, 성기 헬레니즘 조형()의 힘에 의한 공간의 지배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가 있다.

원래 불규칙한 언덕으로 되어 있던 지형이 많은 노력을 들여 여러 단의 테라스로 변화되고, 가능한 한 질서를 추구해 신진, 제단, 극장, 회랑, 도서관, 왕궁 등의 모뉴멘털한 구조물을 세웠다. 같은 식으로 질서에 의한 광대한 공간의 지배는 로도스 섬에 있는 린도스의 여신 아테나의 성역, 코스 섬에 있는 아스클레오피오스 성역 등의 건축 군에서도 명백히 볼 수가 있다. 대도시에 사는 유복한 시민의 주거도 점차로 호사스럽게 되어 모자이크로 장식되고, 주랑에 둘러싸인 안뜰이나 더 나아가 정원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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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 시대 미술의 특징

        - 그리스 시대 미술의 특징

서양 미술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스 미술을 이해하는 공부는 필수적이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시대 구분은 다음과 같다.

기하학 미술(Geometric) B.C 1000말~ BC 700 : 삼각형이나 지그재그와 같은 도형의 단순 반복적인 패턴

아르카익 미술 (Archaic) B.C. 700 ~ B.C. 480 : 인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묘사

클래식 미술 (Classical) B.C. 5C ~ B.C. 4C : 황금기로 사실적이고 감정 표현이 나타나는 인체 표현이 됨.

헬레니즘 미술 (Hellenistic) B.C. 323 ~ B.C. 146 :호화롭고 자유분방한 특징으로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등장 

 

말하자면  그리스 미술은 BC 10세기부터 BC 1세기 말까지의 약 9세기에 걸쳐 그리스와 남부 이탈리아·에게해 주변 지방 등지에서 번영하여 오리엔트 세계로 전파된 미술로 로마에 정복되기 전의 시기이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주변 지역에서 발달했던 문명의 영향을 받은 초기가 있었지만 그리스의 독자적 양식과 정신을 내포하며 눈부신 발전 했다.당시 그리스는 폴리스라 불리는 도시국가가 기반이었기에 언어·종교·문화를 공유하였지만 초기 건축 및 조각은 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폴리스들은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고 미술에서 차이를 보이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 주었다. 일정한 시기의 축제나 종교 의례,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 등을 통해 활발히 교류했다.

 

현세적(現世的)이고 합리적이며 인간 중심적인 그리스 미술은 종교와 관련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문화예술, 철학이나 과학에서도 많은 업적을 이룩했던 고대 그리스의 특징들을 그리스 미술에서 시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 잘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주 다루어진 주제는 신과 영웅, 그리고 인간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이었으며, 조화·통일·균형의 미가 전반적인 특징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인물 조각상을 보면 인체의 동세 표현이 사실적이면서도 동적이고 이상화된 인체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다.

 
 

       -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역사적 흐름

미케네 인들이 멸망 후 그리스 문명은 출발했으나 그다지 영광스럽지 는 못했다.

기원전 1000년 무렵에 여러 가지 그리스어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 에게해 주변에 살고 있었다. 주된 민족은 주로 그리스 본토 출신인 도리아인과 주변의 많은 섬들의 이오니아인이었다..

그들은 넓게 흩어져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 공동체가 모여 도시국가인 폴리스로 발전했다. 최초는 가난하고 미개했으나, 점차 강성해진 폴리스들은 이웃 국가들과 폭넓은 교역을 시작했으며 이집트와 근동의 민족 및 문화에 접촉하면서 풍부하고 완성된 예술형식을 갖추고 뛰어난 이들의 문명에 깊은 감명을 받아 영향을 받아 그리스 미술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 고대 그리스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

        - 조각 작품:

원시시대의 그리스 조각은 처음에는 미개했기에 제물 숭배의 시대를 거쳐서 점차로 조각 본래부터의 모양을 갖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옛 문헌에 따르면 그리스 초기시대에는 크소아논이라 불린 최초의 조각상은 나무를 잘라서 조각을 하여 신상으로서 신전이나 성지에 보존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양식은 극히 경직된 모양을 지닌 기하학적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나, 곧이어 나무로 만든 신상들이 석상으로 바뀌면서 이어서 대형 조각으로 발전해 갔다.

 

조각은 초기에는 거의 종교적 목적인 신전을 위하여 제작되었을 것이다. 이런 작품으로는 신전 본당에 놓기 위해 만들었던 신상, 성지에 세워져 있던 신들이나 영웅상(英雄像), 봉납상(奉納像), 신전 건축의 장식 조각, 묘지에 놓여 있던 사자(死者)의 상, 묘비 부조 등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은 아르카익기를 거쳐서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로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아테네에서는 5세기 후반부터 인체의 이상미를 추구하는 클래식기에 돌입하였다. 이때가 가장 전성기라 부를 수 있는 시기로 인상적인 조각들이 많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적 특성은 로마에까지 계승되었다.

 

       -빈사의 전사

기원전 490년경에 발달한 인물 조각으로, 아이기나 신전 동쪽에 표현된 일군의 설화적 조각의 일부이다. 이 조각상에서는 골격의 구조와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잘 표현함으로써 움직이는 인간의 형태가 자유자재로 표현되어 있다. 다만 눈과 입 그리고 턱수염만은 전통적인 규칙을 따르고 있다.  아르카익 시기 말기의 그리스 미술이 이집트나 수메르에 기반을 둔 커다란 전통과의 관계를 벗어나려는 노력, 즉 권력과 영원으로부터 율동과 자연스러움의 표현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빈사의 전사

       -청동의 포세이돈

460년 전후의 작품인 청동의 포세이돈 상은 클래식기 남성 조각상이다.

이 신상은 보이지 않는 적에게 벼락(혹은 삼지창)을 내려치는 순간을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무기로 신적 권위를 잘 표현한 청동상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포즈는 기원전 5세기의 위대한 조각가들이 대리석 작업보다 청동 작업을 왜 더 선호했는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앞으로 내디딘 포세이돈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균형을 유지와 몸통에서 머리로 중량감을 잘 유지하고 있는 운동감 등이 너무 멋지게 표현되었다. 콘트라포스토의 발전으로 이제 조각가는 아무리 격렬한 움직임이라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해답을 얻은 것이다

 

청동의 포세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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