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시대 미술의 특징

        - 로마 시대 미술의 특징

로마 미술은 북쪽의 에트루리아(에트루리아 지방은 에트루리아 혹은 투스키아(Tuscia)라고 불렀다. 이것이 나중에 토스카나라는 이름으로 현대까지 남았다.) 미술과 반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 미술의 영향을 받아서 싹이 트고 발전한 것이다.

로마는 능률적이고 조직력이 있으며 실제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현실적·행동적인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았다

BC 2세기 후반에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는 엄청난 수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로 가져왔다. 

많은 그리스 출신의 예술가들이 로마에서 옛날의 그리스 명작을 따라서 작업을 했다.

로마의 리얼리즘 미술은 신전을 건축하고 조각이나 회화 등을 표현하는데 그리스의 형식을 빌려와 만들면서도 현실적이고 능률적인 것을 중요시하는에트루리아적이다.

처음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에서 출발했지만 공화정 말기 이후 헬레니즘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얻은 그리스의 영향은 로마 세계를 풍미하고 소위 '그레코로만(Greco­Romna) 시대'를 가져오게 했다.

 다수의 그리스 예술가가 로마에 초빙되어 그리스 명작을 모방한 로마는 그 전 BC 2세기 후반에 그리스를 정복한 이래, 매우 많은 수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로 운반되었고 청동의 원작은 대리석에 되새겼고, 그것들은 로마인의 취미나 헬레니즘 시대의 자연주의적인 경향으로 약간 변경되어 갔다. 그림은 이러한 경향은 비슷해서 유명한 폼페이의 벽화에도 헬레니즘 그림을 따라하고 비속화가 눈에 띄었다.

로마 시대에 초상 조각이 개성적인 표현하는 것이 발달하고, 판테온 같이 거대하고 실용적인 공공 건축이 계속 만들어진 것 역시 헬레니즘 시대 정신과 에트루리아적 정신과의 융합의 결과이다.

로마 미술은  헬레니즘 시대 정신과 에트루리아적 정신 이 두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발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로마 시대의 역사적 흐름

기원전 8세기에 테베레 강변, 파라티노의 언덕을 중심으로 일곱 개의 언덕에 살며, 소규모 로마는 시작되었다. 오랜 에트루리아 문명을 멸망시키고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공화정치 형태를 확립하고 거대한 제국의 중심지로 급속히 성장시키며 기원전 3세기에는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지배했다.

대제국을 완성했던 로마 제국은 영국에서부터 이집트, 스페인, 남부 러시아에 이르는 영역을 형성했다.

이 거대한 제국은 200년이 훨씬 넘기며 강한 지배력을 떨치며  평화로운 시대를 이어갔지만 기원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현재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영광스러운 로마는 저물어갔다.

 

❤️ 로마 시대 미술의 의의

79년에 일어난 베수비오산의 분화(噴火)로 돌연히 매몰된 폼페이 및 헤르쿨라네움에 남아 있는 벽화를 보면 헬레니즘 회화의 수용하며 로마의 회화는 시작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그리스 화가가 부유한 로마인을 위해 건축이나 조각처럼 저택이나 별장을 그림으로 꾸몄다. 헬레니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 프레스코 및 모자이크에 의한 그들의 화풍은 감각적이며 신비적이고 산문적인 주제가 사실적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헬레니즘 회화과 연결된 로마 시대의 회화는 건축에도 좋은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1양식 - 원근법을 쓰고 있기 때문에 벽면이 부각(浮刻)된 것 같은 표현으로 벽면이 대리석으로서 중앙부와 소벽(小壁), 벽의 아래 부분에 둘러댄 판자의 세 가지로 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방법이다. 이 양식은 이미 헬레니즘 시대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하였고, 기원전 80년경가지 쓰이고 있었다.

2양식 - 공화제 시대 로마에서 많이 쓰인 양식으로 제1양식의 복잡화, 이오니아식이나 코린트식의 기둥의 사용, 쑥 들어가는 느낌을 주고,  다른 방이 계속 잇달아 있는 듯한 환각을 일으키도록 그려져 있다.

3양식 - 제정 초기 양식,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기에 널리 사용된 양식인데 복잡한 원근법과 화려한 세부 장식의 사용을 하였고 좌우의 기둥 사이에서는 중정(中庭)이 보이고, 멀리 아름다운 건물을 그리는 양식으로 이집트의 모티프를 많이 그렸다.

4양식 -  63년의 지진 이후의 건축 양식으로 장식이 화려하고 환상적인 표현을 지닌다.

 

 

 

❤️ 로마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

        - 로마의 판테온 :

판테온

아치를 이용한 로마 건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잘 나타난 건물이다. 

또한 다리나 수로 기둥 사이클 연결하기도 했으며 이치를 사용해서 한가운데가 고급은 천장인 궁동 만들 수 있도록 한 토목공학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인 쐐기 모양의 돌로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공법을 사용한 건물이며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건물이 바로 판테온이다. 

로마 건축사상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는 판테온은 고대 로마 최대의 원개 건축이다. 현재 남아 있은 이 신전은 기원 120년경까지 하드리아누스제(帝)에 의하여 세워졌고 로마 시대의 신전이었고 지금도 예배를 위한 사원으로 쓰이고 있다. 이 신전은 초기 기독교 시기에 개조되었는데 궁동 꼭대기에 안에서 하늘을 볼 수 있는 거대한 구멍이 나 있어서 창문이 하나도 없지만 위로부터 풍부하고 고른 빛이 들어오는 신비한 공간이라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 로마의 건축

콜로세움·판테온·수도(水道)·목욕장 등은 로마 시대를 대표하는 거대한 건축으로 가장 대표적인 폴로 로마노 가까이에 있는 콜로세움을 들 수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이 건물은 기원72년에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짓기 시작했고 그 아들 티투스 제(帝)가(帝)가 80년에 완성한 타원형 모양의 넓고 큰 투기장(大鬪技場)으로서 높이가 48.5m이고 외관 4층의 대건축이다.

 

외관이 아름다운 그리스 건축과 다르게 실용성을 중시한 로마인은 내부의 거주성(居住性)에 중점을 두고 로마 건축은 내부 공간의 충실을 기하고 있다

로마 건축은 실용성을 생각하고 주제를 다양화하여 만들었다.

 

 

콜로세움

가장 대표적인 유적(遺跡)으로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바실리카, 카라칼라 황제의 욕장,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탑, 가르드의 다리 등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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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의 특징

        - 헬레니즘 미술의 특징

라오콘 군상,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포함하여 그리스 조각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의 대부분이 차지하는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에서부터 기원전 3030년경까지의 미술을 헬레니즘 미술이라고 부른다.

제국의 풍요한 수도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티오크,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등에서 나타난 헬레니즘의 건축물은 코린트 양식과 함께 건물이 더욱 높아졌고 웅장해졌다. 그리스 미술의 양식과 창의성은 오리엔트 왕국들의 규모 및 전통과 융합되었다.  이오니아식의 소용돌이 장식에다 잎사귀 모양을 덧붙인 모양의 주두를 가진 건축물은 전보다 화려하고 장대해져 갔다..

이 시기의 조각상들은 사실주의를 표방하여 더욱 사실적인 표현을 하면서 순간의 강력하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리스 미술은 대부분 동서양 문화가 만나면서 헬레니즘 시대에 변화를 겪게 되는데 조각의 형상은 격렬한 몸짓과 나부끼는 옷 주름으로 잘 표현하였고, 거칠고 격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여 초기 그리스 조각의 조화미와 세련미 대신하게 되었다.

 

        -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에서 본 역사적 사건

그리스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그리스 미술은 그리스의 정서를 담은 미술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 건설을 한 것은 그리스 미술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일어난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기원전 323)에서부터 악티움 전쟁(기원전 31)까지 약 300년간에 걸친 그리스 회화의 역사적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그리스 미술이 그리스를 넘어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이 시기의 헬레니즘 미술에서는 기존의 도리아, 이오니아 양식의 우아함에서 벗어나 장식적이고 화려한 코린트 양식이 유행했다.

그리스 고전주의 전통은 동방 오리엔트 국가들과 전통과 문화가 섞여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 헬레니즘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

 

멜로스의 비너스

        - 멜로스의 비너스 :

기원전 200년경에 만들어졌을 것이라 보이는 이 멜로스의 비너스상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높이는 202cm이고 현재 프랑스의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비너스 상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멜로스 섬에서 발견되어 <멜로스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클래식 시기가 훨씬 지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인데도 프락시텔렉스가 이루어놓은 업적과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옆에서 보도록 만들었는데 조각가가 아름다운 육체를 모델로 하면서 명쾌하면서 단순하게 그러나 거칠거나 모호한 구석 하나 없이 주요 부분을 구분해서 보여주는 것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 전의 아르카익과 클래식기 그리스 조각에 나타난 여성 입상은 대체로 옷을 입고 있거나 많은 장식을 하고 있으며, 그중 다수는 색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서 조각을 통해 감정의 흐름과 사람들의 정서에 푹 젖어가는 방향이 유행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여신이 아름다움의 신 비너스 같은 신화 속 여신이 누드 조각으로 재현되게 되었다. <밀로의 비너스>는 이 시대의 초기에 해당하고, <키레네의 아프로디테>는 고전주의적 경향이 큰 기원전 100년경의 원작에 의한 로마 시대의 모작으로 생각된다.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엄청난 역동성과 비장미를 표현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1596년에 발견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은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하였고 이 조각을 통해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은 조화와 균형보다는 극적이면서도 인상적인 효과를 더 중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 군의 목마(木馬)를 성 안에 들이는 것을 반대해 신들의 노여움을 샀기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2.4m의 거대한 조각은 큰 뱀에게 칭칭 감겨 막 질식해 죽어가는 라오콘과 불행한 두 아들의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섬뜩한 이 가족이 큰 뱀에게 죽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조각상은 그리스에게 해의 끝에 있는 로도스섬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클리투스 등 3명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풍경을 지배하는 건축

헬레니즘 시대의 건축은 페르가몬의 아크로폴리스의 유구에서 볼 수 있듯이 풍경과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지배하고 그 잠대함을 과시하는 것이 주된 경향이었다. 중요한 건물의 대부분은 마탈로스 Attalos 왕가가 번영했던 기원전 250-150년 사이에 세워졌는데, 성기 헬레니즘 조형()의 힘에 의한 공간의 지배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가 있다.

원래 불규칙한 언덕으로 되어 있던 지형이 많은 노력을 들여 여러 단의 테라스로 변화되고, 가능한 한 질서를 추구해 신진, 제단, 극장, 회랑, 도서관, 왕궁 등의 모뉴멘털한 구조물을 세웠다. 같은 식으로 질서에 의한 광대한 공간의 지배는 로도스 섬에 있는 린도스의 여신 아테나의 성역, 코스 섬에 있는 아스클레오피오스 성역 등의 건축 군에서도 명백히 볼 수가 있다. 대도시에 사는 유복한 시민의 주거도 점차로 호사스럽게 되어 모자이크로 장식되고, 주랑에 둘러싸인 안뜰이나 더 나아가 정원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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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 시대 미술의 특징

        - 그리스 시대 미술의 특징

서양 미술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스 미술을 이해하는 공부는 필수적이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시대 구분은 다음과 같다.

기하학 미술(Geometric) B.C 1000말~ BC 700 : 삼각형이나 지그재그와 같은 도형의 단순 반복적인 패턴

아르카익 미술 (Archaic) B.C. 700 ~ B.C. 480 : 인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묘사

클래식 미술 (Classical) B.C. 5C ~ B.C. 4C : 황금기로 사실적이고 감정 표현이 나타나는 인체 표현이 됨.

헬레니즘 미술 (Hellenistic) B.C. 323 ~ B.C. 146 :호화롭고 자유분방한 특징으로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등장 

 

말하자면  그리스 미술은 BC 10세기부터 BC 1세기 말까지의 약 9세기에 걸쳐 그리스와 남부 이탈리아·에게해 주변 지방 등지에서 번영하여 오리엔트 세계로 전파된 미술로 로마에 정복되기 전의 시기이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주변 지역에서 발달했던 문명의 영향을 받은 초기가 있었지만 그리스의 독자적 양식과 정신을 내포하며 눈부신 발전 했다.당시 그리스는 폴리스라 불리는 도시국가가 기반이었기에 언어·종교·문화를 공유하였지만 초기 건축 및 조각은 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폴리스들은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고 미술에서 차이를 보이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 주었다. 일정한 시기의 축제나 종교 의례,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 등을 통해 활발히 교류했다.

 

현세적(現世的)이고 합리적이며 인간 중심적인 그리스 미술은 종교와 관련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문화예술, 철학이나 과학에서도 많은 업적을 이룩했던 고대 그리스의 특징들을 그리스 미술에서 시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 잘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주 다루어진 주제는 신과 영웅, 그리고 인간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이었으며, 조화·통일·균형의 미가 전반적인 특징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인물 조각상을 보면 인체의 동세 표현이 사실적이면서도 동적이고 이상화된 인체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다.

 
 

       -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역사적 흐름

미케네 인들이 멸망 후 그리스 문명은 출발했으나 그다지 영광스럽지 는 못했다.

기원전 1000년 무렵에 여러 가지 그리스어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 에게해 주변에 살고 있었다. 주된 민족은 주로 그리스 본토 출신인 도리아인과 주변의 많은 섬들의 이오니아인이었다..

그들은 넓게 흩어져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 공동체가 모여 도시국가인 폴리스로 발전했다. 최초는 가난하고 미개했으나, 점차 강성해진 폴리스들은 이웃 국가들과 폭넓은 교역을 시작했으며 이집트와 근동의 민족 및 문화에 접촉하면서 풍부하고 완성된 예술형식을 갖추고 뛰어난 이들의 문명에 깊은 감명을 받아 영향을 받아 그리스 미술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 고대 그리스 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

        - 조각 작품:

원시시대의 그리스 조각은 처음에는 미개했기에 제물 숭배의 시대를 거쳐서 점차로 조각 본래부터의 모양을 갖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옛 문헌에 따르면 그리스 초기시대에는 크소아논이라 불린 최초의 조각상은 나무를 잘라서 조각을 하여 신상으로서 신전이나 성지에 보존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양식은 극히 경직된 모양을 지닌 기하학적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나, 곧이어 나무로 만든 신상들이 석상으로 바뀌면서 이어서 대형 조각으로 발전해 갔다.

 

조각은 초기에는 거의 종교적 목적인 신전을 위하여 제작되었을 것이다. 이런 작품으로는 신전 본당에 놓기 위해 만들었던 신상, 성지에 세워져 있던 신들이나 영웅상(英雄像), 봉납상(奉納像), 신전 건축의 장식 조각, 묘지에 놓여 있던 사자(死者)의 상, 묘비 부조 등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은 아르카익기를 거쳐서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로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아테네에서는 5세기 후반부터 인체의 이상미를 추구하는 클래식기에 돌입하였다. 이때가 가장 전성기라 부를 수 있는 시기로 인상적인 조각들이 많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적 특성은 로마에까지 계승되었다.

 

       -빈사의 전사

기원전 490년경에 발달한 인물 조각으로, 아이기나 신전 동쪽에 표현된 일군의 설화적 조각의 일부이다. 이 조각상에서는 골격의 구조와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잘 표현함으로써 움직이는 인간의 형태가 자유자재로 표현되어 있다. 다만 눈과 입 그리고 턱수염만은 전통적인 규칙을 따르고 있다.  아르카익 시기 말기의 그리스 미술이 이집트나 수메르에 기반을 둔 커다란 전통과의 관계를 벗어나려는 노력, 즉 권력과 영원으로부터 율동과 자연스러움의 표현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빈사의 전사

       -청동의 포세이돈

460년 전후의 작품인 청동의 포세이돈 상은 클래식기 남성 조각상이다.

이 신상은 보이지 않는 적에게 벼락(혹은 삼지창)을 내려치는 순간을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무기로 신적 권위를 잘 표현한 청동상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포즈는 기원전 5세기의 위대한 조각가들이 대리석 작업보다 청동 작업을 왜 더 선호했는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앞으로 내디딘 포세이돈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균형을 유지와 몸통에서 머리로 중량감을 잘 유지하고 있는 운동감 등이 너무 멋지게 표현되었다. 콘트라포스토의 발전으로 이제 조각가는 아무리 격렬한 움직임이라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해답을 얻은 것이다

 

청동의 포세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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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소포타미아 문명 속에 나타난 미술 역사

        - 메소포타미아 시대에 나타난 미술 작품들의 특징

서남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생겨났던 옛 나라들의 미술을 메소포타미아 미술이라 부른다.

메소포타미아라는 말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 끼어 있는 비옥한 충적 층대(沖積層)를 그리스어로 '강의 사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인류 문화 3대 발생지로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불리고 있다. 그중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5000년에는 원시농경생활이 강의 상류 지역에서 영위되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미술 특징은 조각 작품이 적고 공예 감각과 기술이 뛰어났으며 그림을 프레스코 벽화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plaque with an image of ritual 의식 숭배의 이미지가 있는 명판

 

        -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미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 태어난 지역으로 비옥한 토양 덕분에 농경이 발달하였고, 북메소포타미아에는 B.C. 6000년경부터 원시 농촌이 형성됐다. 그 농촌은 소집락을 형성하며 벽돌로 만들어서 집을 짓고, 보리를 경작하고 가축을 사육하였으며, 직선적인 기하학 무늬의 채문토기를 창조했다.

사마라 기(B.C. 5100~B.C. 4500), 할라프 기(B.C. 4500~B.C. 4200)에는 그릇 모양이 다양화되어 독특한 광택을 가진 화려한 채문토기가 제작됐다. 이 무렵부터 남메소포타미아에도 원시 농촌이 만들어지면서 에리두 기에 접어들면서 신전이 만들어지고 우바이드 기(B.C. 4000~B.C. 3500)에는 관개농경(灌漑農耕)이 행해졌다. 우루크 기(B.C. 3500~B.C. 3200)에 원시 농촌은 읍으로 확장 발달되고 토기의 제작에는 녹로가 사용되었으며,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용도에 따라 기형에도 변화가 생겨(주구(注口) 토기,(주구(注口)토기 쌍구토기쌍구 토기, 대부토기[台付土器] 등) 문양이 없어지고 실용적으로 되었고 그림 문자도 발명되었다.

 

❤️ 메소포타미아 시대 미술의 의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초를 세운 최초의 사람들은 수메르인이었다. 그들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수많은 도시를 건설하고 인류 최초로 문자를 사용했으며 공통의 종교, 수학, 법률 그리고 건축법을 발달시켰다

수메르인들은 왕이 죽으면 저승에서도 사람들을 거느릴 수 있도록 모든 가족과 노예들은 물론 왕궁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함께 묻었기 때문에 부장품을 통해서 그들의 찬란했던 문명을 추측해 볼 수 있다.

 

❤️ 메소포타미아 시대 조각의 대표적인 작품

        -각 나라 별의 조각  유품의 특징:

1. 수메르인의 조소 유품(遺品)은 적다. 남메소포타미아에는 석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석조(石彫)는 제작되지 않고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그들의 조형 의욕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그 기술 습득과 연마할 기회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카파제··아스말·아슈르 등지에서 발굴된 조상(彫像)은 양손을 명치 부분에다 댄 직립상(直立像)으로 상감(象嵌)을 한 이상하게 큰 눈, 곱슬곱슬하고 긴 구레나룻을 단 것이 특색이다. 청동제의 우수한 작품 <<마니스 투수왕 입상(立像)>, <구데아 좌상(坐像)> 등 조소에 대한 관조와 조형 기법의 각 단계마다 진보한 작품을 계속 만들었다

2. B.C. 2000년경 왕위에 오른 함무라비가 만든 함무라비 법전의 정상부의 태양신 샤마슈와, 함무라비의 부조상으로 수사에서 출토된 함무라비 왕의 머리 부분 등은 구데아 모자를 쓴 채 표현되어 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한 왕의 조형은 뛰어난 것이다. 특히 함무라비왕 두부라고 전해지는 작품은 위엄과 풍격이 넘쳐 셈족풍()의 구레나룻과 표정에 노쇠한 그늘을 보여 날카로운 개성 묘사가 매력 있다.

 

3. 앗시리아 미술은 부조로 실내의 요벽(腰壁)을 장식했고 바빌론에서는 대로의 양측과 문·성벽을 이용하여 로제트 무늬의 띠와 사자·황소, 마르두크 신의 성수(聖獸)인 드래건(恐龍) 등을 부조로 표현하고 있다. 황색 신체에 적색의 갈기, 백색의 육신에 황색의 갈기라는 식으로 배색한 사자와 드래건과 짙은 벽청색(碧靑色)의 벽면에 제법 사실적(寫實的)인 조형 감각으로 걸어가는 동물을 표현하고 있다.

 

4. 앗시리아 미술에서 최고는 조소이라고 할 수 있다. 님루드에서 출토된 석회암으로 만든 <아슈르 나시르 팔 2세 상>은 드문 앗시리아 환조의 상으로는 완벽한 유품인데 미숙한 표현이 있지만 앗시리아인으로서 왕자라면 가져야 할 이상적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고, 당시 왕자의 의장 풍속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고 또 명문(銘文)을 흉부에 새겼기 때문에 역사적인 자료의 가치도 많은 작품이다. 이러한 환조의 상과 더불어 부조한 유품은 우수한 기술로 세련된 조형 감각과 관조가 투철한 사실적(寫實的) 능력을 가지고 뛰어난 작품을 많이 만들어냈다.

하나만 놓인 환조 상은 적지만 건축 내부의 요벽(腰壁)에 부조한 장식을 가득 메운 것이라든지 외문(外門)이나 내정 입구에 놓인 유익인면사자상(有翼人面獅子像)의 수호신 등 뛰어난 유품이 많다

아나톨리아 고원이나 시리아 뿐 아니라 앗시리아에서도 입구에 사자상을 배치하는 전통은 오래되었다.다. 건물 문 입구의 수호신의 표현 형식은 히타이트에서 시리아를 통해 영향을 받은 것이라 짐작된다.

히타이트 미술을 훨씬 능가하여 현저한 간격을 보여 주고 있는 앗시리아 유익인면수신(有翼人面獸身)의 수호신상은 조형 감각과 표현 형식의 고도한 예술성을 보여 주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장식풍인 말린 머리카락과 구레나룻 와 인면(人面)에 깊이 팬 눈과 코, 그리고 왕관과 날개가 날카롭고 명쾌하게 파내어서 의장화(意匠化)한(意匠化) 조형과 어울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유익인면사자상은 두르 샤르루킨 궁정 입구에서도 발견됐으나 이것은 더욱 발전하여 조형 표현의 기교와 관조가 진전, 세부까지의 의장화나 추상성이 높아져서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Ishtar gate from Baby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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